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김병기 필향만리] 시습

중앙일보

입력 2023.03.09 01:00

수정 2023.03.13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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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그것을 무시로 익히면(學而時習)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논어』의 첫 구절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학습(學習)’은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줄임말이다. 지식이든, 기술이든, 인성이든, 배운 것을 틈만 나면 내 몸에 익혀 체화(體化)함으로써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습(習)’자에 ‘새의 날개’를 뜻하는 ‘우(羽)’가 붙어 있음에 착안하여 송나라 학자 주희(朱熹)는 습(習)을 ‘어린 새가 수시로 날기 공부에 힘쓰는 것(鳥數飛·조삭비, 數:자주 삭)’을 형상화한 글자로 풀이했다.
 

시습

오늘날의 ‘학습’은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학’에 치중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습’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짙다. 묻는 대로 답해주는 챗GPT와 요구하는 대로 그려주는 달리(DALL-E)의 출현으로, 이제는 사람이 무턱대고 지식을 쌓거나 과제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새가 즐거이 날기 연습을 하듯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내 손과 몸에 익힘으로써 스스로 느끼고 누리는 ‘습(習)’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챗봇은 챗봇대로 진화하라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습(習)’을 즐겨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