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에 삽시간에 번진 불
대피소서 만난 이한권(74)씨는 산불초기 목격자다. 그는 이날 오후 1시40분쯤 아내와 함께 합천읍내에서 장을 보고 마을로 돌아오다, 뒷산에 피어로는 연기를 봤다고 한다. 이씨는 “아궁이 때우듯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처음엔) 뭐 태우나 싶었다”며 “그런데 20분도 안 돼 바람이 ‘쌩’하고 불더니 불길이 10m 높이로 치솟았다. 곧 산 위로 번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오후 1시59분쯤 일이다.
일부 주민들은 ‘화마’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모(80대)씨는 “이 마을에 태어나 평생 살았다. 이렇게 큰불은 처음 봤다”며 “TV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마을에서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냐”며 한탄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도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탈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주모(80대)씨는 “인근에 살던 조카가 부랴부랴 (나를) 차에 태운 뒤 마을 대피소로 피신시켜줬다”며 “그 아이(조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했다.
첫 재배 앞둔 청년 귀농인 '한숨'
김씨는 “마음이 불안해 (더는) 대피소 안에 못 있겠다”며 “하우스에 불이 붙진 않았는지 걱정이다. 직접 가보려 했는데 통제하고 있어 못 갔다”고 답답해했다.
올해 첫 ‘산불 3단계’
산림청은 오후 5시 30분을 기점으로 산불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3단계 발령은 올해 처음이다. 3단계는 피해 추정면적 100㏊ 이상, 평균 풍속 초속 7m 이상, 진화 예상 시간 24시간 이상일 때 발령된다.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도 합천지역에 한해 가장 높은 심각단계로 격상됐다. 이는 주불 진화가 완료될 때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산림당국은 헬기 33대, 산불진화대원 1114명 등을 투입했다. 일몰 이후엔 사고위험 때문에 헬기는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현재 민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해 대응 중이다.
오후 10시 기준 산불영향구역은 162㏊, 잔여 화선은 1.2㎞로 추정된다. 이날 산불로 오후 6시 기준 합천군 안계마을과 장계마을, 관자마을 등에서 인근 6개 마을 주민 214명이 마을회관, 경로당, 보건지소 등 7곳 대피시설로 분산돼 있다.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산림당국은 불이 추가 확산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연기와 안개 등 큰 변수가 없으면 9일 오전께 큰불이 잡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