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바스키아의 어머니는 아들 손을 잡고 뉴욕 곳곳의 미술관을 즐겨 찾았다지요. 미술관은 그의 어머니가 고단한 삶에 위로를 받기 위해 달려간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훗날 예술가가 될 아들은 미술관이 사람들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지금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무라카미좀비’의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61)의 어머니에게 미술관은 조기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다카시는 여러 인터뷰에서 “1970년대 초부터 어머니 손에 끌려 전시회에 다녔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미술관은 지루한 장소였다”는 그가 지금은 많은 사람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풍경에 ‘미술계의 악동’ 카텔란 작가도 한몫했습니다. 전시 준비를 위해 리움을 찾았던 작가는 럭셔리한 대리석 기둥과 바닥의 로비를 굉장히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하죠. 〈중앙일보 2월 6일자 18면〉 그는 번들거리는 기둥을 사진 작품 ‘무제 2000’으로 감쌌고 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실물 크기의 ‘노숙자’ 작품 두 점을 설치했습니다. 로비와 전시장 곳곳을 점령한 (박제) 비둘기는 또 어떤가요. “이곳을 지하철역 앞 광장처럼 만들고 싶어했다”는 작가를 생각할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카텔란은 자신의 이런 작품을 통해 “미술관은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이란 잘난 체하는 소수의 사람을 위한 곳, 작품으로 사람을 기죽이는 곳을 말합니다. 미술관은 광장과 공원처럼 누구나 쉽게 갈 수 있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 마음속 깊이 알게 모르게 자리 잡고 있던 ‘권위주의 미술관’에 그가 한방 크게 먹였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서 각자 자기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는 다른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그 풍경까지 눈으로 흡수하며 미술관을 즐기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미술관은 어떤 곳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