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대표 인선, 與 화났다 "아바타만 채워"…尹 "국민 눈높이 맞게"

중앙일보

입력 2023.03.02 17:43

수정 2023.03.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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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KT 대표가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둘째 날인 2월 28일 오후(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전시장에서 '협업(Co-Creation)을 위한 시간인가?'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KT 차기 대표이사(CEO) 후보에 전·현직 KT 출신만 포함되자 여권이 문제 제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간사 박성중 의원) 소속 의원들은 2일 국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KT 이사회는 33명의 차기 대표 지원자 가운데 후보 면접 대상자 4명을 발표했다”며 “하지만 이들은 KT 전·현직 임원이어서 차기 대표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KT 내부에서는 구현모 현 대표가 업무상 배임 의혹으로 수사대상이 되자 갑자기 (후보직에서) 사퇴하고, 이후 자신의 ‘아바타’인 윤경림 사장을 세우고 2순위로 신수정 부사장을 차기 대표 후보군에 넣으라는 지시를 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내부 특정인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T 이사회가 지난달 28일 밝힌 서류 심사 통과자는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사장), 임헌문 KT 매스총괄(사장),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 부문장(부사장) 등 4명으로 모두 ‘KT맨’이다. KT와 인연이 없던 외부 인사는 제외됐다.


국민의힘은 후보 4명이 모두 내부자 출신이라는 점뿐 아니라 윤 사장과 신 부사장 등 ‘구현모 사람’이 포함됐다는 걸 문제 삼고 있다. “연임을 포기한 구 대표가 뒤로 물러서는 액션만 취하고 실제로는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3월 KT 대표이사에 선임된 구 대표는 이번 달에 임기 3년을 채운 뒤에도 연임 의지가 강했다. 지난해 12월 연임 도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면서 지난달 후보에서 사퇴했다.
 

국회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 연합뉴스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는 지난해 11월 “KT 이사회가 전·현직 임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350만 달러의 과징금과 280만 달러의 추징금을 부과받고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구 대표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문제가 된 사안은 KT 전·현직 임원이 2014~2017년 ‘상품권 깡’으로 11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3790만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다. 당시 구 대표는 자신의 명의로 국회의원을 후원한 혐의로 지난해 1월 벌금 1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구 대표는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해 심리가 진행 중이다.
 

2010년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소속 과방위원은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때 어쩌다가 대표에 선임된 구 대표가 현재는 KT에서 마치 오너 행세를 하고 있다”며 “자신의 측근을 후임 사장으로 임명해 거대 기업을 사유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어서 이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현재 KT 이사진 9명(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7명) 가운데 지난 정부에서 선임된 친문 성향의 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여권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지낸 김대유 사외이사, 문재인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유희열 사외이사를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꼽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KT는 민간기업이지만 통신이라는 기간 산업을 담당하고 있어서 정부와 호흡이 필요하다”며 “전문성이 부족하고, 정파적인 인물로 이사진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같은 여권의 분위기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최근 윤 대통령이 ‘KT는 국민의 기업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가 (대표가)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정파적 인사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KT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생에 주는 영향이 크고, 주인이 없는 대기업은 지배 구조가 중요한 측면이 있어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게 안 되면 손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야권에선 KT 이사회가 후보를 추리는 과정에서 외부 인사 중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배제한 게 여권의 반발을 부른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 출신인 윤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지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KT는 국민연금이 대주주여서 그동안 정부 입김이 대표이사 인선에 강하게 작용해왔다”며 “원하는 대표 후보가 탈락하니 지배구조 투명화를 명분으로 사장 인선에 개입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소속 과방위원은 “대통령실이 특정 인물에 대한 선호를 밝힌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또한 윤진식 전 장관은 나이가 많고, 통신 관련 전문가도 아니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선호하는 후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