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사는 학부모 A씨(47)는 최근 부동산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이 집에서 3.5㎞ 떨어진 학교에 다니게 돼서다. 걸어서 한 시간, 버스를 타면 30분이 걸리는 거리다. 선호하는 1, 2지망 고교는 추첨에서 떨어졌고 결국 16지망이었던 학교에 배정된 것이다. A씨는 “집 근처에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학교 3곳은 추첨에서 모두 떨어졌다. 대학 입시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등교하면서 체력을 소모할 수 없어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학교까지 1시간…1%의 ‘불운한’ 학생들
올해 경기도에선 A씨의 딸처럼 가장 마지막 지망 순위의 학교에 배정된 고등학생이 751명이다. 경기도의 고교 신입생 5만8632명 중 82.7%의 학생이 1지망에 배정이 됐지만, 1.28%에 해당하는 이른바 ‘운이 나쁜’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에서 거리가 멀거나 가장 가고 싶지 않은 학교에 가게 된 셈이다.
이는 고교평준화 지역의 일반 인문계고가 추첨 방식을 통해 학교를 배정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학군 내에 있는 고등학교의 지망 순위를 제출하고, 시·도교육청은 이를 바탕으로 전산 추첨 등을 진행한다. 1지망에 떨어진 학생들을 모아 2지망을 다시 추첨하고 모두 배정이 완료될 때까지 이를 반복하는 식이다.
경기도처럼 한 학군의 면적이 넓거나 세종특별자치시처럼 시 전체가 동일 학군인 경우에는 학군 내 추첨이라도 원거리 학교에 배정될 수 있다.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대부분의 학생이 1지망 학교에 배정됐지만, 추첨에 밀려 지망에 아예 적지 않은 학교로 배정된 학생도 52명이 나왔다”며 “동일 학군이다 보니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6~7㎞가 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청 “추첨 방식은 선택권 존중 위해 불가피”
원거리 배정의 문제가 매년 반복되는 만큼 추첨 방식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시행 규칙에 따라 통학 거리를 1.5㎞ 이내로 정해야 하는 초등학교처럼 중·고교도 최대 통학 거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통편의 제공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경남 거제시는 통학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2일부터 학교를 오가는 시내버스 노선을 새로 운행한다. 거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추첨 결과를 번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거제시와 협의해 시내버스 직행 노선이 없는 학교에 배정이 된 학생들을 위해 교통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통학로에 왕복 10차선…등굣길 안전 문제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지난달부터 통학로 안전 점검에 나섰다. 우선 통학로에 보도가 없는 학교를 중심으로 담장이나 축대를 안쪽으로 옮겨 공간을 마련하거나 학교 인근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지정해 보도를 신설할 예정이다. 통학로에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은 상·하반기 개학을 앞두고 정부 부처 합동으로 안전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