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40년만에 빗장 열렸다…국립공원 케이블카 바람 부나

중앙일보

입력 2023.02.27 16:38

수정 2023.02.2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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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상부정류장 모식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강원도의 40년 숙원이었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이에 따라 지리산과 북한산 등 전국 국립공원에서 추진 중인 케이블카 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 소속 원주지방환경청은 27일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索道·케이블카의 법령상 명칭)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조건부 협의’ 의견을 양양군에 통보했다. 상부정류장 규모 축소 등 몇 가지 조건을 달았지만 사실상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한 것이다.
 

40년 넘게 지지부진…“백두대간 훼손” 반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노선도.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양양군 오색지구에서 대청봉 근처에 있는 봉우리인 끝청까지 길이 3.3㎞의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1982년부터 추진됐지만, 환경단체의 반대 등으로 인해 40년 넘게 지지부진했다. 백두대간 핵심 보호구역이자 산양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설악산의 환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도 원주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재보완) 검토 의견’에서 “백두대간 핵심 구역의 훼손이 과도하게 발생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삭도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환경영향평가서가 통과될 수 있었던 건 2020년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사업자인 양양군의 손을 들어준 게 결정적이었다. 앞서 원주환경청은 2019년에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를 부동의했다. 이에 양양군은 행정심판을 제기해 원주환경청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환경영향평가서를 재보완할 기회를 얻어냈고 이번에 조건부 동의를 받아냈다.


당시 중앙행정심판위는 ‘국립공원위원회가 2015년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공원계획변경을 가결할 때 입지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환경영향평가에서 입지 타당성을 또 검토하는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원주환경청은 이를 근거로 “전문검토기관 1곳(KEI)은 입지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출했으나 행심위 재결에 따라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인철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상황실장은 “KEI의 의견이 입지적정성에 해당됐다면 애초에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 내용을 변경할 필요도 없었다”며 “환경부는 행심위 결정이 (조건부 동의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부실하게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첫 육상국립공원 케이블카…“빗장 열렸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이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결정에 대해 케이블카 사업자 측과 환경단체의 반응은 엇갈린다. 김진하 양양군수는 “수없이 많은 백지화 위기가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 정신으로 오늘과 같은 값진 성과를 이끌었다”며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모든 국민이 아무런 장애 없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반면,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설악산을 제물로 삼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무시하고 사업을 허가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결정으로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의 빗장이 열렸다고 우려한다. 그동안 산악 케이블카는 꾸준히 설치·운영됐지만, 국립공원은 환경 보호를 이유로 사업에 제동이 걸려왔다. 육상 국립공원에 마지막으로 설치된 케이블카는 전북 무주군 덕유산리조트에서 덕유산 설천봉을 잇는 케이블카로 1989년 허가돼 1997년부터 운영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공사를 마치고 예정대로 2026년부터 운영을 시작하면 21세기 첫 육상국립공원 케이블카가 되는 것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현재 북한산과 지리산, 속리산 등 주요 국립공원에서는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 중이거나 환경부와 마찰 등으로 중단된 상태다. 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경우 경남과 전남, 전북 등 국립공원이 걸쳐 있는 지자체에서 각각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한 차례 반려된 전남 구례군은 노선을 재조정해 국립공원위원회에 공원계획 변경을 신청하기 위해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국립공원 승격 절차를 밟고 있는 팔공산 도립공원에서도 홍준표 대구시장 취임 이후 갓바위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됐지만 불교계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내년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어서 전국적으로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바람이 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는 “설악산이 됐는데 우리 지역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에 대해 환경부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동의 결정은) 전국 국립공원에서 추진 중인 개발 사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