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도미니언에겐 어려운 소송이었다. 미국에선 언론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보도했다는 ‘실질적 악의’를 입증해야 원고가 승소할 수 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미국 법원이 공개한 폭스뉴스의 내부 자료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폭스뉴스는 투표조작설을 비중 있게 다뤘다. 도미니언 측은 오로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라 지적한다. 폭스뉴스 변호인단은 “대선조작설과 관련해 찬반의 의견을 공정하게 보도했다”고 반박했다.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든, 진행자의 속마음과 일부 보도가 달랐다는 걸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알면서도 모른 척’은 이 시대의 새로운 대화법일지도 모르겠다. 이달 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빼어난 외모부터 당당한 태도까지 모든 게 화제였다.
‘조국 사태’를 취재했던 기자로서 기억에 남았던 건 조 전 장관이 1심 선고 전 딸인 조씨에게 전한 당부사항이었다. 조씨는 방송에서 “A4 용지에 빼곡하게 뭘 쓰셔서 대문에다가 붙여 놓으셨다”며 “저희 아버지가 되게 꼼꼼한 성격이셔서, 공과금 언제 내라. 이런 것 적어놓으시고. 대문 앞에 쌓아 놓은 책을 순서대로 10권씩 넣어 달라. 이런 말씀이 적힌 거였어요”라고 했다. 조 전 장관은 수사를 받고 재판이 열릴 때마다 무죄를 주장해왔다. 그런데도 속으론 꼼꼼히 구속에 대비했다니 놀라웠다. 모든 상황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알면서도 모른 척을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법원은 그날 조 전 장관에 실형을 선고했다. 도망갈 우려가 없고 항소심이 남아 구속하진 않았다. 검찰은 지난 16일 제1야당 대표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 역시도 결백함을 주장한다. 다만, 불체포 특권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