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휴식' 없는 週최대 64시간 검토…MZ노조 "노동계 목소리 들었나"

중앙일보

입력 2023.02.24 16:34

수정 2023.02.2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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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주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 또는 64시간으로 늘리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64시간을 선택하면 11시간 연속휴식 의무(퇴근한 다음 출근할 때까지 11시간은 연속으로 쉬도록 하는 제도)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노동계에선 “죽도록 일만 하라는 말”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24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토론회에서 이지영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과장(오른쪽 두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24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대국민 토론회’를 열고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초안을 마련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 참여했던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토론회 좌장을 맡았다.
 

주 최대 69시간·64시간 선택…재계도 ‘환영’

정부의 기본적인 검토 방향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기존의 ‘주’ 단위에서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추가 선택지를 부여하는 안이다. 현행 제도는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에 최대 연장근로 시간이 12시간까지 허용된다. 만일 연장근로 관리 단위가 늘어나면 한 주는 52시간보다 길게, 그 다음 주는 52시간보다 짧게 근무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근로자 건강 보호를 위한 장치로 11시간 연속휴식 의무가 적용되기 때문에 주 최대 근로시간은 이론적으로 69시간까지 가능하다.
 
아울러 고용부는 주 최대 근로시간을 64시간으로 제한한다면 연속휴식을 의무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 산업재해 관련 고시에 따른 과로 인정 기준이 ‘주 64시간 근로(4주 평균)’라는 이유에서다. 사업장은 노사 합의를 거쳐 선택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최대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도 근로자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일괄적으로 11시간 연속휴식 의무를 적용하면 실제 현장에서 운용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계도 11시간 연속휴식 의무가 부담스럽다며, 정부가 제시한 ‘선택제’에 환영하는 목소리를 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연장근로 단위를 개선하는 것은 유연성 확보 차원인데, 건강보호 조치로 11시간 연속휴식 시간제를 도입해 사실상 일 단위로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것은 개선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오늘 정부가 제시해준 대안이 실제 제도의 효용성 측면에서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그룹 “노사 숙의 거쳐 근로시간제 다듬자”

이날 토론에 나선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제 개편은 단편적이 아니라 보다 지속가능한 산업구조 변화와 연동된 구조적 개편의 일환이 돼야 한다”며 “단순한 숫자 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야 하는 만큼 노사를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산업전환의 시대에 충분한 숙의를 거쳐 신중하게 다듬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용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장근로 총량관리제 도입에 따른 우려는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노동 현장에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큰 흐름에 역행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지,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와 균형적인 조화를 기대할 수 있는지에 있다”며 “11시간 연속휴식제 시행 외에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 추가적인 보호조치 검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MZ노조 “글로벌 스탠더드 맞는지 의문”

하지만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를 이끄는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위원장은 이날 유일한 노동계 참석자로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개편안에) 반대 의견이 크다”며 “우리는 주 40시간을 위한 사회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부 개편안은)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게 맞는지, 글로벌 스탠더드(기준)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연장근로나 유연근로가 (근로자가 알 수 없는) 깜깜이로 결정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노동계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셨는지 제일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김도형 법무법인 원 변호사도 “근로일 간 최소 11시간 연속휴식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은 건강권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많이 일하고 많이 쉬자는 취지인데, 쉬기도 전에 죽을 수 있다”고 밝혔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이 24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 “과거로 회귀…죽음 부르는 압축노동”

이날 논의된 개편 방안을 놓고 노동계 전반에선 반발이 나왔다. 한국노총은 이날 ‘과거로 회귀하는 노동시간, 죽음을 부르는 장시간 압축노동’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부가 나서서 초장시간 압축노동으로 노동자들을 내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1시간 연속휴무 선택은)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유일한 조치마저 포기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경제계가 예외 사유 확대, 1주 88시간 근무 등을 주장하는 것은 죽도록 일만 하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도 “과로사 방지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연속 11시간의 휴식 시간 보장이라는 보완 장치를 제시했는데, 이마저도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를 ‘야근 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