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개전(開戰) 1주년이 된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용감하게 러시아 침공에 맞서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밝은 햇살 아래서 미국 등 자유 진영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임을 밝히는 모습과, 자신이 시작한 침략 전쟁임에도 우크라이나 땅에 발도 못 들이고 모스크바에서 개전 책임을 미국과 서방에 떠넘기는 푸틴의 대조적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러 재제 기여도, 한국과 서방의 평가 달라
지난해 FDPR 예외국서 빠진 것 재현될 수도
더구나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등 서방 진영은 바이든의 전임자 트럼프 때와는 달리, 전례 없는 공동 전선을 형성해 우크라이나군에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하며,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광범위하고 강력한 국제 경제 제재를 시행 중이다. 다만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피하려고 직접 군사 개입은 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 이런 국제 사회의 대(對)러 제재에 동참해 57개 품목의 대러 수출을 통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도 다른 서방국들처럼 러시아에 의해 이른바 비(非) 우호국으로 지정돼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돕느라 무기 및 방산물자가 소진된 우크라이나의 접경국 폴란드에 이른바 K-방산을 대대적으로 수출하는 파급효과까지 누렸다. 나아가 한국 기업들도 전후 우크라이나 복구에 대대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른바 가격 상한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핵무기를 가진 격’이라고 비유되는 산유국 러시아의 주 수입원인 원유 판매에 타격을 주어 침략 전쟁 전비(戰費)를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게 하게 하려는 제재이다. 현재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 상한은 배럴당 60달러로 정해졌는데, 이를 초과해 러시아산 원유를 해상으로 수입하면, 여기에 수반되는 운송, (재)보험, 금융 서비스 등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사실 유럽 국가들도 이번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실정임에도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다시 긋겠다는 푸틴의 침략 전쟁에 결연히 반대하겠다는 의지를 원유가 상한제에 참여해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리 정부로서는 6자 회담 당사국이었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러시아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싶겠고, 가뜩이나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가스, 전기, 난방비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국내 원유 수입량의 5.6% 정도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막히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을 수 있겠다. 러시아는 원유 상한제 동참 국가들에게는 자국산 원유를 팔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우리 정유업계의 부담도 정부로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러시아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가 예외국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유하자면, 미국 교장 선생님이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반 담임 선생님의 지도 방침에는 공감해 그 반 학생들(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기업들)은 담임 선생님(각국 정부)의 숙제 검사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인정해 준 반면, 한국반 담임 선생님의 숙제 검사는 믿을 수 없다며 한국 반 학생들(우리 기업들)은 교장실까지 와서 직접 숙제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런 상황이 무려 한 달여간 이어지다가 부랴부랴 뒷수습에 나선 끝에 겨우 FDPR 예외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과연 이번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주요 서방 국가들 중 사실상 한국만이 참여하지 않은 게, 국익을 치밀하게 고려한 결단의 산물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앞서 본 FDPR 사건이나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파장에 우왕좌왕했던 사례들의 연장 선상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만약 불행히도 후자의 경우라면 세계 경제의 험난한 파고 속에 북한 핵문제까지 다시 불거진 요즘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미국발 파고까지 더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다. 즉 원유가 상한제에 동참하지 않은 한국에 북핵 대응에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유무형의 불이익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전쟁 1주년을 맞은 오늘, 대러 제재에 보다 적극 동참하여 우리의 실리를 찾아가는, 아니 예기치 못한 피해라도 한국 경제에 미치지 않게 미리 대비하는 한국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