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일반화하면, 자살은 조절되지 않은 우울증의 최종 단계다. 조절되지 않는 우울증 환자들은 잠재적인 자살 위험군이라 볼 수 있고, 이들 중 일정 비율이 자신의 삶을 끝내는 슬픈 선택지로 내몰린다. 그런데 여기에 성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보인다. 국내에서 우울증 유병률은 여성이 남성의 2배 정도 높은데, 정작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의 2배라는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남녀 간에 자살을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 달라서다. 여성은 손목 긋기와 같이 덜 치명적인 자살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자살 시도 건수는 많아도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적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더 치명적인 방법을 선택하기에 최종적으로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더 많다. 절대적인 우울증 환자 수를 조절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치명적인 자살 수단을 막는 것의 중요성도 결코 낮지 않다.
과거 농촌에서는 농약 음독자살이 많았다. 그라목손 같은 고독성농약은 화학적인 특성 탓에 독성이 체내에서 계속 증폭되는 끔찍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복용한 사람을 소생시키기가 무척 어렵다. 그 결과가 과거 연간 2000여 명에 달하는 농약 음독 자살자다. 그런데 판매 제한 조치가 나온 지 10년여가 지난 2021년엔 농약 음독 자살자 수가 741명으로 대폭 줄었다. 농약 대신에 다른 자살법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불러왔을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체 자살자 수도 딱 그 정도 줄었으니 나름대로 효과를 본 게 맞는다. 비난 이유가 없단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해당 계획안에 번개탄 금지 외에도 이미 정신질환 전반을 관리하는 대책이 포괄적으로 들어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정책 홍보의 부재가 아쉬울 뿐이다.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