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먼저, 돈 나중에"…BTS도 낸 고향사랑기부금 여기에 썼다

중앙일보

입력 2023.02.22 16:52

수정 2023.02.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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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농협중앙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서영교(오른쪽에서 두 번째)·어기구(오른쪽에서 네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달 19일 서울역에서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 농협중앙회

지자체들 "기부금 사용처 논의 중" 

고향사랑기부제가 올해 첫발을 뗀 가운데 지자체마다 관심을 끌 만한 기부금 사용처 발굴에 골몰하고 있다. 유명인 기부나 지자체 간 상호 기부, 이색 답례품 등으로 흥행몰이 중이지만, 지속적인 모금엔 한계가 있어서다.
 
전북도는 22일 "상반기 안에 고향사랑기부금운용심의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기부금 사용처와 운용 방안을 정할 예정"이라며 "인구 소멸 대응 관련 사업이나 인재 양성에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여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2021년 제정된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1인당 연간 500만원 한도 내에서 본인 주소지 외 고향 또는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 공제 혜택을 받는 제도다. 지자체는 기부 금액 30% 내에서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줄 수 있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는 물론 특별시·광역시·도(道) 등 광역자치단체도 기부 대상이다.
 
고향사랑기부금법에 따르면 기부금 사용 목적은 크게 4가지다. ▶사회적 취약 계층 지원과 청소년 육성·보호 ▶지역 주민 문화·예술·보건 증진 ▶지역 공동체 활성화 지원 ▶주민 복리 증진 사업 등이다.


김관영 전북지사(왼쪽)와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달 17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상생 발전 업무 협약식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자체마다 독창적 사업 발굴 안간힘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지자체별 모금 실적은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지자체 규모 등에 따라 모금액 편차가 크다. 전북만 해도 현재까지 전북도와 도내 14개 시·군이 모은 기부금은 12억~13억원이다. 기부금이 적게 모인 지역은 3000만원 안팎이고, 김제시·고창군·임실군 등은 1억원 이상 모았다고 한다.
 
각 지자체는 기부금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독창적 사업 발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미 사용처를 정한 곳도 있다. 충북도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9일 충북대병원에서 김영환 충북지사(왼쪽)와 최영석 충북대병원장이 의료비 후불제 현판식을 한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도, 전국 최초 의료비 후불제 시행…"기부금 사용" 

충북도는 김영환 지사 공약인 '의료비 후불제'에 사용키로 했다. 충북도가 지난달 시행한 의료비 후불제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미루는 취약 계층에게 돈을 빌려줘 제때 치료를 받게 하려는 제도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보훈 대상자, 장애인 중 65세 이상 노인 등 11만2358명이 대상이다. 치과 임플란트, 무릎·고관절 인공 관절, 척추 질환, 심·뇌혈관 6가지 질환 수술·시술 때 의료비를 빌릴 수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장에서 열린 '제주 고향사랑기부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제주지사 "세대별 맞춤 공략 계획 수립" 

제주도는 기부자 기념숲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도시공원에 숲을 만들어 기부자 명패를 부착하는 사업이다. 곶자왈 공유화 사업이나 해양쓰레기 문제 해결, 공영 관광지 할인 등에도 기부금을 쓸 예정이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달 초 "제주 기부자 가운데 30~40대 직장인 비중이 높은 것은 '제2의 고향'을 강조한 제주도 전략과 방향이 적합했다는 의미"라며 "세대별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고향사랑기부제 안착을 위해선 일본처럼 지자체별로 기부금을 어디에 쓸지 명시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2008년 고향사랑기부제와 비슷한 '고향납세 제도'를 시행했다. 사용처도 지역 사업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최근 지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시리아를 지원하는 사업도 가능하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형평성 위주 사업에만 국한하면 지역 간 차별성이 없다"며 "지자체가 특색 있는 사업을 발굴해 모금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수 김연자가 지난달 30일 배우 김수미,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 이어 세 번째 전남 고향사랑기부제 응원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구 2만 日몬베츠시 "유빙 보호" 1530억원 모아 

실제 인구 2만 명이 사는 홋카이도 몬베츠시는 2021년 일본 전체 1789개 지자체 중 고향납세 모금액 1위를 기록했다. 빙하 관광으로 먹고사는 몬베츠시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빙하가 녹자 유빙(流氷)을 보호하는 사업을 내세워 1530억원을 모았다. 
 
일본에서 시행 중인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황철호 전북도 자치행정국장은 "현재 고향사랑e음(ilovegohyang.go.kr) 사이트에선 기부할 지자체만 정할 수 있고, 크라우드 펀딩 구현은 안 된다"며 "단순히 '지역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쓰겠다'고 홍보하기보다 기부금 사용처를 공개하면 본인 철학에 맞거나 관심 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전주기전여고를 졸업한 국민의힘 조수진 국회의원이 지난 15일 전주시에 고향사랑기부금을 기탁하고 고향사랑기부제 동행 응원 릴레이를 하고 있다. 뉴스1

"크라우드 펀딩 필요"…"기부자 의견 물어야"

일각에서는 "기부금이 얼마나 모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먼저 돈을 어디에 사용하겠다고 밝히는 건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양성빈 지역연구소장은 "한국은 답례품을 보고 기부할 지역을 정하는 초보적 수준"이라며 "기부금 사용처를 정한 지자체도 사업 내용이 두루뭉술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