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서글픈 '삶의 질'...OECD서 더 낮은 곳 콜롬비아·튀르키예뿐

중앙일보

입력 2023.02.20 13:08

수정 2023.02.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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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론 우등생, 주관적으론 열등생’.

 
국제 사회에서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정작 한국 국민 스스로는 박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근로와 집값 부담,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외로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수치 뒤에 가려진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동작구의 한 노인정에서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통계청이 펴낸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매긴 삶의 만족도는 2019~2021년 평균 5.9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평균(6.7점)보다 0.8점 낮았다. 일본(6.0점), 그리스(5.9점)와 비슷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만족도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5.8점)와 튀르키예(4.7점) 2곳뿐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만족도가 낮은 건 삶의 질이 떨어져서다. 통계청이 지난해 삶의 질과 관련한 71개 지표를 분석한 결과 18개 지표가 1년 전보다 악화했다. 주로 여가·주거·가족·공동체 영역에서 삶의 질이 떨어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앤데믹(풍토병)에 접어들면서 고용·환경 등 분야는 상대적으로 나아졌다.

 
구체적으로 근로 시간이 길어 일명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나쁘다는 점이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국내 임금 근로자의 2021년 기준 월 근로시간은 164.2시간으로 2020년(월 163.6시간)에 비해 0.6시간 늘었다. 최바울 통계개발원 경제사회통계연구실장은 “근로 시간의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근로 시간이 길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 비율도 삶을 팍팍하게 했다. 가구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2021년 기준 206.5%를 기록했다. 가계 부채 비율은 2008년 138.5%에서 꾸준히 늘었다. 특히 2016년(12.2%포인트), 2020년(9.6%포인트), 2021년(8.7%포인트) 등 최근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가구가 쓸 수 있는 소득에서 부채 상환에 필요한 지출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다. 일본(115.4%), 프랑스(124.3%), 영국(148.5%)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폭등한 부동산이 삶의 질 하락에 미친 영향도 컸다. 자가 점유 가구 비율이 2021년 57.3%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0.6%포인트 줄었다. 주택 공급이 늘었지만, 막상 자기 소유 집에 사는 경우는 줄었다는 뜻이다. 최바울 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주택 마련은 단순 거주의 개념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져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파트 위주 주거 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2021년 기준 85.5%로 1년 전보다 0.9%포인트 감소했다.

 
잘 노는 것도 삶의 질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여가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2021년 기준 27% 수준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28.8%)보다 1.8%포인트 줄었다. 특히 60대 이상의 여가생활 만족도가 18.8%로 떨어졌다. 최바울 실장은 “여가 생활은 건강 상태와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만큼 여가 생활 만족도는 삶의 다양한 영역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종합 지표”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저출산 고령화의 그늘도 두드러졌다. 65세 이상 인구 중 독거노인 비율이 지난해 20.8%로 나타나 1년 전보다 0.2%포인트 늘었다.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경우’ 또는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비율을 보여주는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기준 34.1%로 나타났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사회적 고립도가 41.6%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수능을 앞두고 부산 사하구 부산여고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뉴시스

중고생의 학교생활 만족도는 지난해 기준 51.1%로 2020년보다 8.2%포인트 떨어졌다. 자살률은 2021년 기준 10만명당 26명으로 1년 전보다 0.3명 늘었다. 최바울 실장은 “모든 자살이 삶의 만족도가 낮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삶의 만족도와 자살률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삶의질학회장)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성장과 소득만 추구하고 여가와 교육, 공동체같이가치 있는 것을 뒤로 미루다 보니 ‘풍요의 역설’이 나타났다”며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구석구석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