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이 들어 난방을 덜 하니까 아이가 한 달째 감기를 달고 삽니다."
집이 워낙 허름해서 추운 데다 거동이 불편한 구순 어머니, 어린이집 다니는 6살 딸도 있지만 난방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씨의 어린 딸은 연신 콜록거렸다. 그는 “정부가 지원하는 등유 바우처가 추가로 나왔어도 피부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원 확대라곤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럴 거면 그냥 안 주거나 아예 정부에서 기름을 대신 넣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난방비 폭탄’ 논란이 터지자 서둘러 취약계층 보듬기에 나섰다. 모든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최대 59만2000원의 에너지바우처와 도시가스 요금 할인 지원을 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5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선 등유·LPG를 쓰는 기초수급·차상위 가구에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씨 같은 취약계층은 여전히 힘든 겨울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이달 초부터 추위가 풀리며 난방비 부담이 줄었다지만 이들의 체감온도는 아직 ‘영하권’이다. 크게 늘어난 난방비를 정부 지원이 제때 메워주지 못 하거나 턱없이 부족해서다.
예상을 넘는 난방비에 이씨 가족의 기존 에너지바우처 지원액은 이미 바닥났다. 그나마 바우처 추가 지원을 받게 됐지만, 가스비가 얼마나 나올지 몰라 지난달 이후 난방을 최소화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일도 거의 못 나가서 생활비 부담도 크다. 그는 “집에서 양말 신고, 쌍화탕 데워 먹으면서 버텼다. 겨울 시작되기 전부터 바우처 지원액이 크게 늘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안 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이 모여있는 지역에도 봄이 오긴 멀었다. 14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다닥다닥 붙은 방들이 마주 보는 건물 복도에선 난방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에너지바우처 신청을 알리는 안내문이 쪽방촌 곳곳에 붙어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바우처를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신청한 경우도 꽤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한 달에 방세 40만원 내는 것도 부담인데, 한두 달 뒤엔 집주인이 전기·가스요금 때문에 방세 올려달라고 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룹홈은 운영비·아동 생계비 등 정부 지원금, 기업 등의 후원금에 의존한다. 하지만 후원받기 쉽지 않다 보니 아이들 양육에 필요한 생계비를 끌어다 난방 비용을 내는 식으로 버티는 게 부지기수다. 이재욱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기획정책팀장은 “운영비 현실화가 안 되니 사정은 늘 어렵지만, 아이들을 위해 난방은 계속해야 한다. 이번 겨울은 어떻게 버텨도 다가올 여름이나 겨울이 또 걱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비싼 에너지’가 이어지면 더운 여름엔 냉방비, 추운 겨울엔 난방비 문제가 반복되는 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취약계층 지원은 단기성 대책에 그치지 말고 내실 있게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현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지역본부 사회복지사는 “취약계층에게 난방은 생존권과 직결된다. 에너지 빈곤층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전수조사를 해서 일괄 지원하는 식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취약계층 냉·난방비 문제를 풀려면 근본적인 주거 환경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에너지바우처도 기준을 유연하게 바꿔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