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 삭제된 ‘북한=적’ 개념 부활
‘북한=적’ 개념은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95년 백서에 처음 나왔다가 참여정부 시절 ‘직접적 군사위협’ ‘심각한 위협’으로 대체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2010년판에 되살아난 뒤 2018년판과 2020년판에선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구절로 바뀌었다. 정치 상황에 따라 적 개념이 수시로 바뀐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번에 부활한 적 개념을 놓고 국방부는 북한 위협의 실체와 엄중함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국무위원장’ 호칭 빠진 김정은, ‘북·미’ 표현은 ‘미·북’으로
다시 규정된 적 개념과 맞물려 북한과 관련된 표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김정은에 뒤따르던 ‘국무위원장’ 호칭이 모두 빠진 채 ‘김정은’으로만 기술된 게 대표적이다. 지난 백서가 국무위원장 호칭을 꼬박 붙였던 것과 차이가 있다. 2022 국방백서는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최고사령관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면서 북한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통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9·19 군사 분야 남북합의와 관련된 대목도 크게 바뀌었다. 지난 백서에 포함된 9·19합의 합의서·부속서 전문이 이번 백서에선 모두 빠졌다.
플루토늄 20㎏ 증가, 2030년 100기 이상 핵탄두 가능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흐름은 북핵과 미사일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핵 분야와 관련, 2022 국방백서는 북한이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 70여㎏을 보유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2020년 50여㎏에서 20㎏ 늘어난 수치다. 군과 정보당국은 북한이 2018년 말 영변에서 핵시설 가동을 중단했다가 2021년 7월쯤 5㎿ 원자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까지 약 5개월이 소요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21년 2월부터 7월까지 영변에서 실험실을 가동하는 화력발전소가 운영됐다고 밝힌 바 있다. 수년 전 남겨둔 폐연료봉을 이 시기부터 재처리하기 시작했고, 2021년 7월부터는 다시 5㎿ 원자로 활동을 통해 새 폐연료봉을 만들어낸 뒤 플루토늄을 축적하는 과정을 지속하고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대남·대미 대화 국면에서 핵 활동을 잠시 멈췄다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후 핵개발에 다시 나선 셈이다.
북한이 핵탄두 보유량에 중점을 두는 정황은 이미 포착돼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전원회의 보고에서 “현 정세가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IDA는 북한이 목표로 하는 핵탄두 보유량이 300여 기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탄도미사일 7종류 추가
핵 보유량과 함께 핵투발이 가능한 탄도미사일 종류 역시 늘어나고 있다. 이번 백서에는 2020년 백서에 없었던 북한 탄도미사일 7종류가 추가됐다. 여기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과 북극성-4ㅅ·북극성-5ㅅ·극초음속 미사일 2종 등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은 물론 근거리탄도미사일(CRBM)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고중량탄두형이 포함된다.
백서에 처음 등장한 CRBM의 경우 지난해 4월 김 위원장 참관 하에 발사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의미한다. 당시 북한은 “전선 장거리 포병부대들의 화력 타격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며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과 화력임무 다각화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전술핵을 아우르는 여러 종류의 탄두를 방사포처럼 한국을 겨냥해 쏘겠다는 의미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의 전술지대지유도무기 케이티즘(KTSSM)과도 유사하다”며 “견고한 지하시설을 정밀타격할 목적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고중량탄두형은 2021년 3월부터 시험발사가 이뤄지고 있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개량형을 뜻한다. 해당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2.5t, 사거리는 600㎞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었다. 탄두 중량이 2t, 사거리가 800㎞인 한국의 현무-4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미사일 능력을 상쇄하기 위해 북한이 개발 중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한국을 향한 핵 공격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가까운 이웃 국가’로 격상
대외 관계와 관련해선 일본에 대한 서술이 우호적으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2020년 백서는 일본을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이웃 국가”라고 표현하는 데 그쳤다. ‘일본=동반자’라는 2018년 백서 표현이 2년 뒤 격하된 것으로 당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등 악화된 대일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
각국 국방교류협력을 소개하면서도 한·일 협력은 한·중 한·러를 제치고 가장 먼저 서술됐다. 통상 사용되는 중·일·러 대신 '일·중·러'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2020년 백서에선 한·일 협력이 한·중과 한·러 사이에 자리한 바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 위협이 커지는 등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서 일본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와 인도의 군사동향이 서술된 점도 이번 백서에서 새로 나온 내용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위주로 군사 정세를 다룬 지난 백서보다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2022 국방백서는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해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는 등 관여를 확대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발맞추는 행보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