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즉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국내 유일의 지하 연구시설(KURT·KAERI Underground Research Tunnel)이다. 터널의 끝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보관하기 위한 구리용기 모형 등 다양한 연구·실험 시설들이 배치돼 있다.
원전 내 저장시설, 10년 내 포화
‘내 임기땐 안 된다’ 시간만 보내
영구 저장시설 기술적으로 가능
‘고준위특별법’ 국회 문턱 넘어야
‘내 임기땐 안 된다’ 시간만 보내
영구 저장시설 기술적으로 가능
‘고준위특별법’ 국회 문턱 넘어야
‘탈(脫) 원전’을 벗어났더니, 이번엔 사용후핵연료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가동 중인 원전 25기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을 임시로 보관하는 시설이 조만간 포화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에서 지금껏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총 1만8600t에 달한다. 모두 원전 내 수조 등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일 설명회를 열고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기반으로 한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 재산정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은 2030년, 경북 울진의 한울 원전은 2031년, 부산 기장의 고리원전은 2032년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전망보다 1~2년 단축된 수치다. 현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등으로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진 탓이다.
영구저장시설은 기술적으로 가능할까.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사용후핵연료는 5㎝ 두께의 구리 용기에 담아 지하 500m 암반에 구멍을 내고 묻은 다음 주변 방수를 위해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질의 광물질로 채우면 위험할 일이 전혀 없다”며 “반핵운동가들이 위험을 과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진사례가 있다. 핀란드는 지하 깊숙한 곳의 암반에 구멍을 내 사용후핵연료를 묻는 영구처분시설을 2025년 세계 최초로 운영한다. 스웨덴도 같은 시설을 2030년대 초 운영할 예정이다.
부안사태(2003년)·안면도사태(1990년) 등이 재발할까 몸을 사려왔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려던 계획이 알려지면서 해당 지역에 대규모 소요 사태가 일어났던 아픈 기억이다. 안면도에선 주민과 환경단체가 들고 일어나 경찰서에 불이 나고 경찰관이 연금당하는 홍역을 치렀다. 관련 계획은 취소되고, 장관이 물러나야 했다. 부안에선 주민 시위가 거세지면서 1만 명이 넘는 경찰이 배치되고, 군수가 시위대에 집단폭행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쌓여갔지만, 정권이 여러 번 바뀌어도 대책은 겉돌았다. 지난 탈원전 정부는 한술 더 떴다. 원전 건설이 아닌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연구도 어려워졌다. 지성훈 원자력연구원 부장은 “지난 정부에서도 원전은 가동되고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나왔지만,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을 위한 예산은 되레 깎였다”고 말했다. 원자력학계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지만, 지난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하면 계획보다 원전을 더 빨리 닫을 수 있으니 임시저장시설 증설이나 영구처분시설 관련 연구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최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한국 원전 역사 45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문턱에 올라섰다. 민주당 안을 포함, 3개 법안이 발의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서 심의 중이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영구처분시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며 “양 당간 이견이 좀 있지만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이상 미루면 한국인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살든지, 거리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