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빈석'서 열병식 내려다본 김주애
조선중앙통신이 9일 공개한 열병식 사진 속 김주애는 검은색 바지 정장에 코트와 모자 차림이었다. 이설주의 스타일을 빼닮은 모습의 김주애는 김정은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쪽 뒤편에 어머니 이설주를 두고 걸었다. 지난 7일 건군절 기념연회에서 부모를 양옆에 두고 기념촬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위치는 또다시 정중앙이었다.
어머니보다 딸을 앞세워 걷게 함으로써 김씨 일가를 지칭하는 '백두혈통'의 위상을 강조하려는 의도된 동선 배치로 풀이된다.
김씨 일가가 자리를 잡자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북한 군인들은 주석단을 향해 "김정은 결사옹위"에 이어 "백두혈통 결사보위"를 외쳤다.
노동신문 '도배'한 김주애 사진
무려 10개면에 걸쳐 열병식 소식을 전한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 역시 사실상 김주애를 중심에 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노동신문은 이날 총 150장의 열병식 사진을 게재했는데, 무기 및 열병식 전경을 담은 116장을 제외한 34장의 사진 가운데 김주애가 포함된 사진은 절반에 가까운 15장이었다. 이 가운데는 사실상 김주애의 독사진이 2장이 포함돼 있고, 김정은과 나란히 등장하는 사진도 9장에 달했다.
김정은을 제외하고 독사진이 실린 인물은 김주애가 유일했다. 이설주의 경우 대부분 김씨 부녀의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수준이었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모습은 이날 공개된 사진에서 보이지 않았다.
"핵 강국 목표 그 자체"
김주애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 발사 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이날 열병식까지 모두 다섯 차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다섯 차례의 공통점은 모두 군 관련 행사란 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특히 핵·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군 관련 행사에서 김주애를 부각하는 배경과 관련해 "김주애 자체가 북한의 미래 세대를 상징하며, 이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핵 강국 건설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을 내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서 '화성-17형'은 핵강국으로서 전략적 지위를 과시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라며 "이번 열병식은 물론 화성-17형과 연관된 행사에 딸을 계속 대동한 것은 미래 세대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한다는 측면과 함께 북한 주민들과 핵·미사일 간의 연대를 강화시키려는 가교 역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계자 발표장 됐던 열병식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김주애의 4대 세습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김정은이 김주애를 이번 열병식에 참석시킬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이와 관련 국가정보원은 그동안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 등에서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해왔다. 그러다 이날 김주애가 열병식에 공식 등장한 이후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주애의) 후계 구도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4대 세습 의지 공고화"
전문가들도 김주애가 등장한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김정은이 '4대 세습'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김주애를 최소한 후계자 '후보군'에는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딸을 공개활동에 동행시키며 4대 세습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김주애를 열병식 주석단에 세웠다는 것은 후계 구도와 관련해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도 "김주애의 등장은 북한의 절대 통치권력은 백두혈통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계속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다만 "후계자 내정보다는 백두혈통의 영속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또 미성년의 딸을 열병식에 등장시켜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는 북한의 호전성을 희석시키려는 노림수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한 김정은
한편 이날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별도의 대중 육성연설을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이날까지 총 13차례의 열병식에서 2012년, 2015년, 2018년, 2020년, 2022년 등 5번 직접 연설했다. 이날도 5년, 10년으로 꺾어지는 해(정주년)에 해당하는 건군절 열병식인만큼 공개 연설을 할지 관심을 모았지만, 딸 김주애를 대동하고 나와 병력과 각종 군 장비를 사열하는 데 그쳤다.
한편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시키는 중절모와 코트 차림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흰색 원수복, 뿔테 안경, 헌팅캡 등 꾸준히 김일성 따라하기를 시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