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의용 "내가 북송결정, 文엔 보고만"...檢도 그렇게 결론

중앙일보

입력 2023.02.02 05:00

수정 2023.02.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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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내가 탈북민 북송을 결정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정 전 실장의 이 같은 진술은 문 전 대통령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에겐 혐의 연루점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정의용(왼쪽) 전 국가안보실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 서훈(오른쪽) 전 국정원장. 중앙포토

‘최종 책임자’ 정의용… “文에 북송 결정 내리고 보고”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는 전날에 이어 1일에도 정 전 실장을 소환해 탈북민 2명의 귀순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낸 혐의(직권남용)를 조사했다. 정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등 관계기관 보고를 종합한 뒤, 내가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 정상적인 절차였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문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북송 결정을 내린 이후에 보고만 드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도 정 전 실장을 이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보고 있다. 특히 탈북민들이 타고 있던 어선을 나포하기 전부터 우리 정부가 ‘북송 결론’을 내리고, 귀순 의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점 등을 집중 추궁했다. 어선 나포 하루 전인 2019년 11월 1일, 청와대는 국정원에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 북송 사례’에 대해 문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 탈북민에 대한 국정원 합동조사가 이례적으로 조기 종료된 배경에도 서훈 전 국정원장보다 정 전 실장의 책임이 더 컸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나포 시점부터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추방하기까지 주요 의사결정마다 정 전 실장의 북송 기조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실장은 “해당 탈북민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동해상에서 수 차례 도주 시도를 하는 등 귀순 진정성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7월 입장문에서도 “희대의 엽기적 살인마들로 애초에 귀순할 의사가 없었다. 법과 절차에 따라 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남북관계 신경 쓴 文…노영민은 기소 대상서 빠질 듯 

탈북 어민 2명은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이들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인계했다. 사진 통일부

법조계에선 문 전 대통령의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잘 아는 정 전 실장이 민감한 탈북민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다 범죄한 걸로 의심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는 “탈북민도 헌법상 우리 국민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고, 강제북송할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추측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범행 동기로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를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5일 ‘인원 인계’를 북측에 통지했는데, 같은 날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아세안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다.
 
앞서 검찰은 김유근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김준환 전 국정원 3차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김영식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소환조사했다. 김 전 비서관에겐 당시 법무부가 ‘강제송환은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검토서를 냈는데도 청와대가 북송을 강행한 경위를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정 전 실장이 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낮은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 또 노 전 비서실장은 안보 현안에서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에서 빠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