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965년 관계 정상화 이후 양국은 협력의 세월이 반목의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양국 관계에 치명상을 입힌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전까지, 40여년 간은 대체로 밀고 끄는 사이였다. 실제로 1970년대 초 미국 닉슨 행정부가 유엔군사령부를 없애겠다고 해 한국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그러자 1973년 유엔 총회에서 일본 대표는 “일방적 유엔사 해체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고 역설하며 한국을 대변했다. 유엔 무대에서의 치열한 남·북 외교전 때 미국과 함께 핵심 지원국 노릇을 한 것도 일본이었다. 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주장할 때도 그랬다. 1977년 워싱턴에 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는 “‘철수’ 대신 ‘감축’으로 가야 한다”고 카터를 설득했다. 일본 힘이 얼마나 컸는지 모르지만 결국 유엔사도 무사했고 철수 문제도 감축으로 마무리됐다. 이뿐 아니다. 미·중 데탕트 이후 한국 공산권 외교의 전초기지 중 하나가 일본이었다. 일본은 자국 내 공산국 공관을 소통 채널로 활용토록 했다.
한·일 협력의 세월, 반목보다 길어
'차이나 불링'에 공동 대응도 가능
한·일 관계 개선, 국익 차원서 봐야
요즘 적잖은 이들이 일본을 한물간 나라로 여긴다.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본 문화의 인기도 시들해진 탓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은 배울 게 많은 나라다.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일본 내 마법의 말'이란 글이 실렸다. "미국은 일본 정부로부터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위한 산업정책을 배우라"는 게 핵심 메시지였다. 일본 정부가 중국 의존이 심한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수출입 다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한국에 절실한 노하우 아닌가.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정치인은 반일 카드를 여전히 남용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미·일 연합훈련을 두고 "극단적인 친일 행위",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가 생길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럼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 군사협력을 중시했던 사실에 대해선 뭐라 할 것인가. 일본 잘못을 잊자는 게 아니다. 과거에 함몰돼 국익 도모의 기회까지 차버리진 말자는 얘기다. 특히 앞으로 심해질 '차이나 불링'(China Bullying·중국의 괴롭힘)에 맞서 함께 대응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도 이런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