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도 1991년 인터뷰에 실패했다. 그는 2021년 은퇴 후 MBC경남 김현지 PD와 함께 30년 전 실패한 작업에 다시 도전한다. 주변 인물 100명을 인터뷰하면서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탄생한 배경이다. 김장하 선생은 명신고 재학생 외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학 때까지 군소리 없이 지원했다. 수많은 ‘김장하 키즈’를 길러냈으나 “나는 사회에 있는 걸 준 것이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에 갚아라”고 했다. 대학 가서 공부 안 하고 데모를 해 죄송하다는 이에겐 “그 역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며 격려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 죄송하다는 이에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고 말한다.
진주는 ‘저울처럼 평등’하다는 뜻의 형평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1923년 백정 신분제 철폐를 필두로 모든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주창했다. 선생은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고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건립을 후원하는 등 형평운동의 정신을 이어왔다. 남들에겐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자신은 단벌 신사에 뚜벅이로 평생을 살았다. 선생은 “돈은 똥과 같아 쌓아두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진주의 ‘아낌없이 주는 큰 바위 얼굴’이 연초부터 주는 울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