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지만 연약한 토스카, 여자로서 연민 느끼며 빠져들었죠”

중앙일보

입력 2023.01.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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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성악가 이천혜가 29일 일본 도쿄분카 카이칸에서 열린 후지와라 오페라단 공연 ‘토스카’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일본오페라협회]

29일 오후 2시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에 위치한 도쿄문화회관에서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공연이 열렸다. 후지와라 오페라단은 1934년 창립한 일본 최초의 오페라단이다.
 
이 공연의 타이틀 롤은 소프라노 이천혜(42·일본명 사다야마 치에)가 맡았다. 그는 재일교포 최초로 후지와라 오페라단 주역 데뷔를 했다.
 
무대는 지극히 고전적이었다. 기존의 ‘토스카’와 비교해보면 일본 특유의 깔끔하고 정갈한 미장센이 돋보였다. 연출가 마쓰모토 시게타카는 “푸치니가 악보에 남긴 지시 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반영하는 것이 목표”라며 기본에 충실한 무대를 만들었다.
 
이천혜가 2막에서 유명한 아리아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르자 청중의 박수가 오래 지속됐다. 이천혜는 절제와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스태미너를 안배해 3막에서도 1막부터 이어온 목소리가 변함없이 지속됐다.


공연 뒤 주역 데뷔를 축하하는 꽃다발을 받느라 분주한 이천혜를 만났다. “부담과 기대가 함께했던 1년 2개월을 기쁜 마음으로 마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2년 후지와라 오페라단에 입단한 이천혜에게 ‘토스카’ 주역으로 결정됐다는 연락이 온 건 2021년 11월. 아리아 몇 개는 불러본 적 있지만 전막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는 이천혜는 여리고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 음성의 소유자다.
 
무겁고 드라마틱한 배역인 토스카가 부담되기도 했지만 막상 불러보니 잘 맞았다고 했다. “특히 2막에서 아리아 전후로 액션도 많이 있어서 너무 격하게 하면 노래에 지장이 있을까 봐 균형과 조절에 신경을 썼습니다. 마음은 뜨겁지만, 연습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했지요.”
 
일본 돗토리현에서 태어난 이천혜는 밀라노 시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 2010년 도쿄 신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PMF)에서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한 ‘라 보엠’의 미미 역으로 노래했다. 재일교포 최초의 주역이었다.
 
이천혜는 주인공 토스카를 준비하며 캐릭터, 악보 뒤에 있는 배경까지 원작 소설을 보고 연구했다고 밝혔다.
 
“토스카가 강하고 독한 이미지지만 연약하고 애정 결핍인 인물입니다. 부모님의 사랑 없이 수도원에서 자란 고아죠. 신앙심이 강하고 애정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카바라도시에 집착하죠. 토스카를 노래하면서 안쓰러웠어요. 똑같은 인간이고 여자라는 연민을 느끼면서 배역에 더욱 빠져들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오페라 가수로 살아가는 재일교포 3세의 삶은 어떨까. 이천혜는 “한국인이라서 느꼈던 차별은 전혀 없다”며 “편안한 환경에서 노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이천혜가 노래할 때 객석에서 촉촉해진 눈가로 무대를 응시하는 부친 이유사(69·사다야마 유지) 회장을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리사이클링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재일교포 2세 사업가다.
 
“한국에서 오페라에 출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힌 이천혜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노래했다면 앞으로는 청중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