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스는 야구선수 출신이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5년간 2루수와 외야수로 뛰었다. MLB 무대는 밟지 못했다. 더블A에서 더는 올라가지 못하고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다. 그 후 퍼시픽 대학에서 약사 자격증을 딴 뒤 맥조지 로스쿨에 진학해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률 사무소를 차려 한동안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0년 처음으로 에이전트 업무에 뛰어든 보라스는 선수 시절의 경험과 인맥을 살려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1983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 마무리 투수 빌 코딜에게 750만 달러짜리 계약을 안기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구단에게는 '악마', 선수에게는 '천사'로 불리는 수퍼 에이전트로 자리를 굳혀갔다. 최대한 시간을 오래 끌며 버티고, 결국은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는 협상 기술로 MLB 최고 몸값의 역사를 연이어 바꿨다.
1997년 그렉 매덕스의 5년 5750만 달러 계약, 1998년 케빈 브라운의 8년 1억500만 달러 계약, 2000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10년 2억5200만 달러 계약, 2012년 프린스 필더의 9년 2억1400만 달러 계약 등 MLB 역사의 상징적인 계약이 모두 보라스의 손을 거쳤다. 역대 FA 투수 최고액인 게릿 콜과 뉴욕 양키스의 2019년 3억 2400만 달러 계약도 보라스의 작품이다.
보라스는 수퍼 스타뿐 아니라 괴물급 유망주들도 미리 낚아채 구단을 압박하기로 유명하다. 전직 메이저리거 수십 명이 보라스 코퍼레이션 스카우트로 일하고, 그들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제학자와 공학자도 따로 있다. 보라스는 이렇게 축적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MLB 입단을 노리는 주요 신인 선수들과 미리 에이전트 계약을 끝낸다. 2012년 LA 다저스와 계약한 류현진이나 올해 피츠버그 파이러츠에 입단한 심준석, 벌써 MLB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이정후 등이 그렇게 레이더에 포착됐다.
'보라스 사단'이 된 이정후는 유·무형적 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미국 스포츠키다는 26일(한국시간)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등을 유력한 행선지로 꼽았다. 모두 보라스의 금전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빅 마켓' 구단이다. 보라스의 또 다른 고객인 일본 프로야구 최고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는 지난달 보스턴과 5년 9000만 달러(약 1100억원)에 사인했다. 일본은 KBO보다 한 수 위의 리그지만, 이정후는 요시다보다 5살 더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