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이광진은 한국의 차관보급에 해당하는 베테랑 공작원으로 휘하에 다수의 공작원을 거느린 인물"이라며 "북한에서 해외 공작이 가능한 요원이 많지 않은데 이광진이 단연 독보적"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이광진이 배성룡·김일진·전지선 등 북한 공작원을 지휘한 것으로 파악했다.
“간첩을 지휘하는 간첩”
당국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최소 6차례 이씨를 비롯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제3국에서 만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고 있다. 당국은 A씨가 2018년 9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광진에게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아 남대문 사설 환전소 등에서 환전하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광진이 본명인지도 불투명
이광진은 2017년부터 북한의 지령에 따라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운동 등을 벌인 이른바 '청주간첩단' 사건의 배후로도 지목돼 있다. 국정원은 2018년 해당 사건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했고, 관련자 4명 중 3명은 현재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적발 이후 북한의 지령에 따라 관련 증거를 상당 부분 파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당국이 수사 중인 제주지역 간첩 사건에서 드러난 북한 문화교류국과 'ㅎㄱㅎ' 간의 교신·지령 내용은 주로 지난해 주고받은 것이다. 진보정당 간부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제주지역 노동운동 간부와 농민운동 간부를 포섭해 'ㅎㄱㅎ'을 결성한 시점이 2017년 7월이란 점을 감안하면 초기 교신 및 지령의 상당수가 인멸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공 수사가 속도를 내는 배경으로 지난해 이뤄진 정부 교체와 코로나 확산을 꼽는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이광진이 연루된 공작 사건 조사를 본격화했던 시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무렵이다. 당시 지휘부에서 간첩 수사에 난감해 하면서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은 구체적 수치로도 나타난다. 자유민주연구원에 따르면 2011~2016년 26건이었던 간첩 적발 건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2020년에는 3건으로 확 줄어들었다.
여기에 코로나 확산으로 대공 수사망이 집중된 것도 수사 속도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간첩을 직접 내려보내는 이른바 '직파' 비중을 줄이는 대신 중국·동남아 등 제3국에서 공작원의 신분을 세탁해 한국에 입국시켜 한국 내 조직을 포섭하고 복귀하는 수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입국 제한에 국내 잠입 타격”
하지만 2020년 2월 코로나 본격화로 각국의 입국 제한이 강화하면서 북한 공작원의 제3국 접촉이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당국의 수사망도 좁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급감한 것은 물론 해외여행까지 제한되면서 북측과 간첩단 간 지령 하달과 보고 확인 과정에서 정체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간첩수사는 통상 내사에만 6~7년이 걸리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며 "전문적인 수사 기법을 통해 협의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장기간 척박한 환경에서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관련 수사 인력들에 대한 지원과 정책 등이 정권 교체 등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