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이수만 누른 행동주의펀드, 다음 타깃은 7개 금융지주

중앙일보

입력 2023.01.25 17:51

수정 2023.01.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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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행동주의(주주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를 표방하는 한 사모펀드가 국내 상장 금융 지주에게 “배당을 확대하지 않으면 주주 행동에 나서겠다”고 공개서한을 보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 눈치를 봐야 하는 은행은 배당을 쉽게 늘릴 수 없는 사업 구조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배당 확대 안 하면, 주총 표 대결”

얼라인파트너스운용자산이 사전 공개한 주주제안. 얼라인파트너스

25일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파트너스)은 국내 상장한 7개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를 상대로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사전 공개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사모펀드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가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에 과도한 용역비를 지급한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해 관철한 곳이다.
 
앞서 지난 2일 얼라인파트너스는 공개서한에서 당기순이익 절반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주주 친화정책을 7개 금융 지주에게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추가로 공개한 주주제안은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얼라인파트너스가 주주총회에 안건으로 상정할 내용이다. 안건에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생각하는 적정 배당액과 중기 배당정책 변경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은행이 배당 확대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본격적인 주총 표 대결을 통해 요구 사항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얘기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은행권의 과도한 대출 증가율만 줄여도 자본 확충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배당 확대가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가계 대출이 높아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대출 확대를 억제하는 것은 정부 정책 방향과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했다.


금융당국 눈치에 은행 배당 제한

4대 금융지주 배당성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사, 한국투자증권]

주주 행동으로 이어질 정도로 배당 확대가 문제가 된 것은 그동안 은행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지나치게 배당을 적게 줘서다. 지난해 4대 금융 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액의 비율)은 20% 중반이다. 통상 50%가 넘어가는 해외 은행보다 턱없이 낮다. 이 때문에 주가도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은행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0.5배 수준이다. PBR이 1보다 작으면 시가총액보다 회사 순 자산이 많다는 의미로, 보통 주가 저평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이런 낮은 배당성향에는 금융당국 개입 영향이 크다.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주식회사인 은행 배당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순 없다. 하지만 은행 안정화를 정책 목표를 두는 금융당국은 지나친 배당 확대에 매번 제동을 걸어왔다. 실제 2021년엔 금융위원회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배당액을 순이익의 20% 내로 제한할 것을 공개적으로 권고했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고배당 주식인 외국과 달리 한국의 은행주는 정부 눈치 때문에 배당액이 작아 선호하는 투자자가 별로 없다”고 전했다.
 
코로나19 고비를 넘긴 만큼 최근 은행은 이전보다 배당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한금융은 보통주자본비율 12.0%를 초과하는 이익은 배당 또는 자사주 취득 방식으로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KB금융과 하나금융도 중기 목표로 배당성향을 3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문제는 여전히 은행이 금융당국 눈치를 보느라 배당을 마음대로 늘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얼라인파트너스는 대출을 줄여서 배당을 늘리라는 입장이지만, 대출을 줄이고 늘리는 것 하나도 은행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외국·기관 환영”…금융당국은 ‘신중’

이 때문에 얼라인파트너스의 배당 확대 요구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란 시장 평가가 나온다. 얼라인파트너스가 확보한 7개 금융 지주의 지분은 2대 주주로 등재된 JB금융(14.04%)을 제외하고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배당 확대를 내심 바랐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가 동조한다면, 주총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이 대표도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호응이 크기 때문에 주총까지 가면 안건이 무조건 통과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실제 최근 은행 배당 확대 요구가 거세지면서, 금융당국도 제재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에만 해도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해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금융기관이 큰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 범위 내에서 배당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론이 있다”며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배당 확대 움직임에 대해 “우리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면서도 “배당보다 우리는 은행 안정화에 정책 목표를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이 미리 자본을 확충해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도 있지만, 주식시장을 통해서도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주가를 어느 정도 부양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이익이 많이 날 때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펼쳐야 주가도 올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