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D·P' 채운 그 '맛깔장면' 이제 못 본다, 왜

중앙일보

입력 2023.01.24 09:00

수정 2023.01.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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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초과’ 그 스시, 메소드 관객 낳았다  

어느 겨울 해 질 무렵 부산 서부경찰서 취조실. 경찰관이 조사를 받으러 온 여성 참고인에게 식사를 내준다. 통상 ‘경찰서 밥’으로 알려진 설렁탕이나 국밥이 아니라 정갈한 도시락에 담긴 선명한 색감의 스시다. 취조실 바깥에서 이를 지켜보던 동료 경찰이 당혹하며 내뱉는다. “저거 시마스시 모둠 초밥이야? 저거 경비처리 돼?”

박찬욱 감동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해림푸드시스템의 도시락. 사진 부산영상위원회

지난해 6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한 장면이다. 장면 속 등장 인물은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 동료도 놀랄 만한 고가의 스시 도시락은 경찰관인 해준이 조사를 받으러 온 서래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나타내는 장치로 쓰였다.
 
대종상ㆍ청룡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등을 거머쥔 이 영화는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올해 가장 좋았던 영화’ 목록에 올랐다. 또 개그우먼 김신영의 여우조연상(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 수상 등 작품 안팎에서 화제를 낳았다. 탕웨이가 먹은 스시도 많은 관객 기억 속에 남았다. 가게 위치 정보가 공유되고, 스시를 먹으며 이 영화를 본다는 ‘메소드 관객’(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관객) 인증도 소셜미디어(SNS)에서 이어졌다.
 

헤어질 결심, DㆍP 속 ‘그 업체’들 어떻게 들어갔나

이 장면에 쓰인 건 부산에 있는 식당 ‘스시난’의 도시락이다. 이외에도 영화에는 역시 부산지역 업체인 해림푸드시스템 도시락과 대선소주 등이 등장했다. 앞서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며 화제를 낳았던 드라마 ‘DㆍP’에서는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이 부산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삼진어묵 제품을 먹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삼진어묵 역시 대표적인 부산의 어묵 제조업체 중 하나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스시 도시락. 작중 '시마스시'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부산 소재 식당인 '스시 난'의 도시락이 촬영에 사용됐다. 사진 부산영상위원회

이 같은 장면은 모두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역 기업 PPL(간접광고) 지원 사업’에 힘입어 탄생했다. 사업은 2020년부터 진행됐다. 부산영상위를 통해 부산에서 영화ㆍ드라마를 촬영하는 제작진과 스태프에게 지역 기업 제품을 제공한다. 핵심은 해당 제품의 영상 노출 등 ‘간접광고’ 지원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매년 부산시에서 5000만~7500만원을 받아 진행했는데, ‘대박’ 작품 속에 제품이 노출되면 홍보 효과가 크다.


부산영상위 관계자는 ”지역 기업엔 영화 등 메이저 콘텐트 간접광고에 접근할 기회가 부족하지만, 부산은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며 “제작을 준비하는 영상위가 지역 기업과 콘텐트 제작자를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런 사업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부산영상위는 지난해까지 3년간 영화ㆍ드라마 등 콘텐트 22편에 지역 기업 간접광고 등을 성사시켰다. 대부분 식품이었으며, 흥행 작품에 노출된 제품은 큰 홍보 효과를 본 것으로 부산영상위는 파악했다.
 

올해 ‘예산 0원’ 배경엔 업계 논리

하지만 올해 예산이 한 푼도 배정되지 않으며 이 사업은 폐기됐다. 지난해부터 사업 성격도 변했다. ‘메이커스(영화, 드라마 등 콘텐트 제작자) 응원 캠페인’ 목적으로 작품 속 노출 등 ‘간접광고’ 조건 없이 11편의 영화ㆍ웹드라마 제작진에게 부산지역 업체의 커피ㆍ간식차 등만 지원됐다. 효과가 낮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는 이 사업 예산도 편성하지 않았다고 부산시는 밝혔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대선소주. 사진 부산영상위원호

부산시와 부산영상위 설명을 종합하면 이 같은 결정에는 ‘업계 논리’가 작용했다. 메이저 콘텐트 간접광고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오가는 민간 시장인데, 제작 지원 역할을 띠는 기관이 이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로 사업을 지속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설명이다. 부산영상위 관계자는 “단순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부산에서 촬영됐기 때문에 실제 지역에 도움이 될 만한 수단을 찾다가 지역 기업 PPL 지원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라며 “부산이 실익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사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