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앙증맞은 앞발 아래를 보면 작가의 이름 앞글자(A, D)를 딴 모노그램과 제작연도가 적혀 있다. 특히 제작연도 1502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이 작품이 동시대라는 것을 일러준다. 뒤러의 토끼는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의 지적 호기심이 인간을 포함하여 세상 만물에 뻗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뒤러의 토끼는 오스트리아 빈 알베르티나 박물관에 있다. 주로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어 진작은 실견하기 어렵지만, 클림트의 ‘키스’와 함께 빈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500년 전 뒤러의 걸작
금방이라도 튀어오를듯
백남준의 TV 보는 토끼
명상하는 수도승 닮아
금방이라도 튀어오를듯
백남준의 TV 보는 토끼
명상하는 수도승 닮아
앞서 백남준은 텔레비전 12대를 이용해 달이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차오르는 과정을 연출한 바 있다. 그리고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품 제목처럼 우리의 먼 조상들은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듯이 달을 열심히 바라봤을까. 우리처럼 달 속에서 토끼의 이미지를 찾아냈을까.
칠흑 같은 밤하늘에 둥실 떠오른 보름달은 태곳적부터 인류에게 상상력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흥미롭게도 동아시아에서 달의 그림자는 오래전부터 토끼와 연결되었다는 것은 토끼가 일찍부터 우리에게 상상의 근원이 되는 신비로운 영물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뒤러의 토끼는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백남준의 토끼는 지금 당장 만나 볼 수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의 미술을 한국 동시대 미술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대규모 전시(2월 26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달에 사는 토끼’뿐만 아니라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 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백남준 작가가 야심 차게 만든 초대형 비디오 설치 작품 ‘다다익선’도 제대로 볼 수 있다. 구형 모니터 1003대가 하나둘씩 고장 나면서 2018년 완전히 멈춰 섰는데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지난해 9월부터 하루 두 시간씩 제한적으로 재가동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주 4일만 운용한다고 하니 미리 작동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2023년 토끼해를 맞아 토끼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다. 나의 경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새해, 토끼 왔네’(3월 6일까지)를 추천하고 싶다. 토끼와 관계된 미술작품 70여 점이 나왔고, 달과 토끼를 주제로 한 특별 섹션도 마련됐다. 백남준의 토끼를 연상하면서 본다면 감상의 즐거움이 두 배로 커질 것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