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올해 처음 열린 재정운용전략위원회에서 “상저하고 경기 흐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역대 최고 수준 신속 집행 목표를 계획했다”며 “상반기 중 재정ㆍ공공 투자, 민자 부문을 통틀어 340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재정 집행 속도전에 나선 건 올 상반기 경기가 예상보다 더 깊게 가라앉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4%, 하반기는 2.1%로 예상했다. 지난해 상반기 3%, 하반기 2.5%였던 경제성장률이 올 상반기 중 바닥을 찍고 하반기 다시 오른다는 시나리오다.
여전한 고물가, 치솟는 금리, 불안한 대외 경제 상황 등이 맞물려 상반기 중 경기 한파가 심해진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재정 다이어트’에 나선 만큼 여유 재원은 없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경기가 나쁘다고 추가 예산을 편성할 상황도 못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직후 30조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자고 제안했고,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추경은) 장차 불가피할 것”이라며 ‘군불 때기’에 나섰다. 하지만 당정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당은 “방만 재정, 포퓰리즘적 발표”(류성걸 국민의힘 의원)라고 즉각 반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예산 편성권, 증액 권한을 쥐고 있는 정부의 찬성 없이는 추경 편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만 정부 예상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하반기에도 경기 침체가 지속한다면 ‘재정 공백’은 피할 수 없다. 연간 예산을 상반기에 몰아 쓴 탓에 하반기 정부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는 긴축 재정 기조를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최 차관은 “향후 재정정책방향에 있어 최우선 순위는 건전재정 기조 착근을 위한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과 건전성 관리 제도적 기반 공고화”라며 “저성과ㆍ유사ㆍ중복사업 구조조정, 의무ㆍ경직성 지출 원점 재검토 등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재정준칙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 지속가능한 재정관리체계 구축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집중적으로 지원할 12대 핵심 재정 사업으로 ▶두터운 사회 안전망 구축 ▶취약부문별 맞춤형 지원 ▶반도체 산업 초격차 확보 등을 선정했다.
이와 함께 올 상반기 중 장기 재정운용계획인 ‘재정비전 2050’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 차관은 “관계부처 협의와 전문가, 일반 국민, 2030세대 등 광범위한 의견 수렴 등을 종합해 발표할 계획”이라며 “재정비전을 통해 확정된 과제는 향후 예산 편성에 반영하는 등 본격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