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공상과학 소설 속의 한 장면을 학교로 가져오는 일은 그리 쉽고 당연한 일이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지만, 실제로 구현돼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예를 찾기 힘들다. 시중의 사교육 제품과는 달리 공교육을 위한 기술 시스템은 오랜 시간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교실 현장의 여러가지 요구는 물론이고, 글자를 모르는 학생,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 학습이 부진하거나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학생 등의 다양한 상황이 고려돼야 한다. 많은 투자와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제품이 성숙하지 않은 프로젝트 초기에 설익은 비난과 비판을 받아 좌초하기 쉽다. 한국, 미국, 케냐 등지에서 최고의 IT 회사들이 주도했던 대규모 디지털 교과서 사업들이 초기에 사회적 검증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AI와 디지털의 도움 받는 교실
저절로 이루어지기는 불가능
기술적·철학적인 고민 속에서
끈질기고 지속적인 투자 해야
저절로 이루어지기는 불가능
기술적·철학적인 고민 속에서
끈질기고 지속적인 투자 해야
그러나 기술적인 시스템을 설계하기 전에 그 목적이 무엇이며, 미래의 교육은 무엇을 필요로 할지 등에 대한 사회적 성찰과 철학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적은 것이 아쉽다. 과거에 미래 모습을 상상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했다. 몇십년 전에 그려진 미래 학교의 상상도에는 책을 읽어주는 기계, 선생님처럼 말하는 로봇, 틀린 문제 갯수만큼 때려주는 자동 막대기들이 묘사돼 있다. 당시 이런 공상이 진짜 이루어졌다면 교육 발전에 큰 해악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입시와 평가 위주의 교육에 갇힌 우리들은 이런 오류에서 자유로울까. 10년 후의 세대에게 효율적인 수학 문제 풀이가 얼마나 중요할까. 지금의 과목들이 10년 후의 직업에 얼마나 필요한 과목들일까. 10년 후에 어른이 된 아이들은 뒤를 돌아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근시일내에 AI 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높은 수준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지다 보니 인간이 어떤 역량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기술업계 안에서도 뜨겁다. ‘AI 의 대부’ 라고 불리는 메타(페이스북)의 수석 과학자 얀 르쿤은 “모든 사람이 개인 AI 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지식과 지능보다는 동기 부여, 도덕적 나침반, 경청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자신보다 똑똑한 조언자들에 둘러싸인 정치나 경영 리더들처럼”이라는 페이스북 포스트를 남겼다. 문제를 풀고 암기하는 것보다 사회성, 도덕과 윤리, 협동, 동기 부여 등을 중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오랜 예측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교육의 디지털 전환이란 지금에 적합한 디지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디지털 시대 인간에게 맞는 사회적 역량을 계속해서 찾아내는 여정일 것이다. 로켓을 만드는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로켓을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에 더 가깝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머지 않아 시작하게 될 이 모험이 많은 실험과 성공과 고난을 넘어 의미있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