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노숙인에 "뛰지마, 다쳐"…尹도 찾은 '옛집국수' 주인 별세

중앙일보

입력 2023.01.10 17:11

수정 2023.01.10 17:4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서울 용산 삼각지 인근 '옛집국수' 모습. 사장인 배혜자 할머니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사진 tvN 방송화면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대통령실을 서울 용산으로 옮긴 뒤 참모들과 처음 점심을 먹었던 삼각지 인근의 ‘옛집국수’ 주인 배혜자 씨가 최근 향년 8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0일 배 씨 유족 등에 따르면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배 씨는 지난 8일 병세가 악화돼 별세했다. 배 씨 유해는 이날 화장돼 경기 파주 하늘나라 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배 씨가 운영했던 옛집국수는 서울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40년 동안 영업을 해 왔다. 배 씨는 1981년 암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3남 1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이 국숫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옛집국수' 식당에 주인 배혜자 씨의 부고 소식이 붙어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 식당은 식사를 한 노숙자가 도망치자 배 씨가 뛰지 말라고 했다는 따뜻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배 씨는 1998년 겨울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새벽 6시에 식당 문을 열었는데 남루한 차림의 40대 남성이 식당에 들어섰다.  


이 남성은 당시 2000원이었던 국수를 시키더니 허겁지겁 먹어 치웠고, 배 씨는 국수 그릇을 빼앗아 이 그릇에 다시 국수를 한가득 채워 가져다줬다.  
 
국수 두 그릇을 먹어 치운 남성은 ‘냉수를 한 잔 떠달라’고 했고, 배 씨가 물을 가지러 간 사이 도망쳤다.  
 
이 모습을 본 배 씨는 “그냥 가, 뛰어가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9일 점심 서울 용산 삼각지 인근 '옛집국수'를 찾아 식사를 했다. 사진 대통령실

 
이 남성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사업가가 됐고, 10년 뒤 이 식당이 방송에 나오자 해당 프로그램 PD에게 편지를 보내 “‘옛집’ 주인 할머니는 IMF 시절 사업에 실패해 재산도 잃고 아내도 도망쳐 세상을 원망하던 나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준 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배 씨는 이 사연이 보도되며 식당이 명성을 얻자 “배고픈 사람에게 국수 몇 그릇 말아 준 것 가지고 과분한 치사를 받았다”며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이 식당은 지난 5월 19일엔 윤 대통령이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뒤 처음으로 참모들과 함께 점심 외식을 하며 재조명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이자 멸치 육수에 국수를 말아 낸 5000원짜리 잔치국수를 주문해 먹었다.

 
현재 이 식당은 배 씨 자녀들이 대를 이어 운영 중이며, 앞으로도 국숫집 운영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