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식당 대표 살해범, 신상공개 안 한다…"2차 피해 우려"

중앙일보

입력 2023.01.01 09:00

수정 2023.01.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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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상공개위 5번 중 첫 ‘비공개’

제주 유명 식당 대표 강도살인 피의자인 50대 박모씨가 지난달 28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8일 오후 1시 제주동부경찰서. 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3명이 검찰 송치를 앞두고 취재진 앞에 섰다. 피해자가 소유 음식점 운영권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혐의로 구속된 50대 박모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경찰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가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3명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검찰 송치 전날(27일) 결정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취재 과정에서 성과 나이까지 알려진 상태였다.
 

“피해자 가족 등 추가 피해 고려” 

제주 유명 식당 대표 강도살인 피의자인 50대 김모씨가 지난달 28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제주에서는 이번 사건을 포함해, 그간 5차례 신상공개위가 열렸다. 그 전 열린 4차례 모두 공개 결정이 내려졌다.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상공개위는 제주경찰을 통해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자가 사망했다”면서도 “수사가 진행 중으로 공공의 이익 유무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상공개위에는 경찰 3명과 외부위원 4명 등 총 7명이 참여했다. 외부위원은 변호사 2명, 언론인 1명, 종교인 1명 등이다. 이들 외에 사안에 따라 의사가 참여할 수 있다.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따른 ‘신상공개’ 구성 요건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강력범죄 ▶피의자 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이다. 또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다. 범죄자 가족 인권 보호 차원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법적인 신상공개 구성요건과 함께 피해자 가족 등이 볼 수 있는 2차 피해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2010년 피의자 신상공개 관련 법 조항 신설 이후 제주에서 신상을 공개한 피의자는 4개 사건, 총 5명이다. 2016년 제주시 연동 한 성당 신도를 살해한 중국인 천궈레이(60), 2019년 전 남편 살해 한 고유정(40), 같은 해 성착취물 제작·배포 배준환(39), 2021년 제주 중학생 피살사건 백광석(49)·김시남(47) 등이다.


고유정, 공개 결정에도 머리카락으로 가려 

전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019년 2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채 2차 공판이 열린 제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신상이 공개된 이기영. 사진 경기북부경찰청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지난 9월까지 전국적으로 신상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모두 21명이다. 송치 때 얼굴이 공개되거나 피의자가 동의한 3명 외에 18명이 신분증 증명사진 공개에 그쳤다. 공개 결정이 내려져도 ‘머그샷’(mugshot) 공개를 강제할 수 없는 점 때문이다. 머그샷은 ‘경찰 사진’(police photogragh)의 은어로 피의자를 구금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촬영한 식별 가능한 수준의 얼굴이 포함된 사진이다. 
 
실제 지난 9월 서울에서 20대 동료 여성을 스토킹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전주환(31) 얼굴이 경찰이 배포한 증명사진과 달라 논란이 일었다. 또 경기도에서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지난달 29일 신상이 공개된 이기영(31)도 피의자 선택에 따라 결국 운전면허증에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2019년 신상공개가 결정된 고유정은 고개를 내리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사진을 내놨다. 경찰이 피의자 동의 없이 머리를 강제로 들게 할 수 없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피의자가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막을 방법이 없다.
 

피해자 업체 운영권 뺏기 위해 7차례 범행 시도

지난달 20일 오전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된 제주 유명식당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 최충일 기자

이번에 신상공개가 불발된 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 강도살인 사건은 박씨가 피해자 소유 업체 운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7차례에 걸쳐 다른 피의자들에게 사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50대 김모씨는 박씨의 요구에 따라 지난 16일 오후 3시 2분∼10분 제주시 오라동 주거지에서 기다리다 귀가한 피해자를 집에 있던 둔기로 살해한 혐의로, 40대 이모씨는 피해자 동선을 남편 김씨에게 전달하는 등 범행을 도운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조사결과 김씨는 피해자 주거지에서 휴대전화와 명품가방·현금다발을 훔쳤으며 이날 오후 3시 19분쯤 주거지에서 나와 휴대전화는 인근 다리 밑에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부부는 박씨에게 범행 전에 3500만원을 받았으며, 범행 후 빚 2억원을 갚아주고 식당 분점 하나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가 가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