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새해와 나이

중앙일보

입력 2022.12.3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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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새롬 정치부 기자

윤석열 정부의 ‘만 나이 통일’에 국민적 공감이 모이고 있다. 해넘이를 앞두고 “내년에는 한 살 안 먹는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매년 꼬박꼬박 늙는 게 아쉬웠던 많은 이가 내심 기뻐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법제처는 지난 27일 사법 관계와 행정 분야에서 만 나이로 표시방식을 통일하는 내용의 민법·행정기본법 개정안을 내년 6월부터 시행하겠다고 공포했다.
 
법을 두 건이나 개정했으니 공무(公務) 체계가 대대적으로 변할까 싶기도 하지만 답은 ‘아니오’다. 무려 110년째 만 나이가 법제·행정상 표준 나이로 쓰이고 있어서다. 일제가 1912년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에 ‘연령은 출생일부터 기산한다’고 공포한 게 시작이다. 1958년 제정된 현행 민법이 이를 그대로 따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도 동사무소·법원 사무나 부동산 거래 등 공무 처리 때 자신의 만 나이를 기재해왔다. 은행 등 금융거래나 병원 진료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은 27일 유관 협회 점검회의 결과 “이번 법 개정이 금융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실 이번 법률안 개정은 조문 변화 자체보다도 국민에게 주는 ‘상징 입법’ 성격이 컸다. 법률을 두 건이나 바꾸고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을 노출함으로써 오랜 사회 관습인 ‘세는 나이’, 즉 한국식 나이 사용을 중단하자는 메시지를 강하게 남긴 것이다. 개정 전·후 법조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민법 158조)를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 나이로 계산하고, 연수(年數)로 표시한다. 다만 1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월수(月數)로 표시할 수 있다’로 아주 상세히 바꿔 기술한 정도다. 그러면서 혼인(18세)이나 유언(17세)을 할 수 있는 나이를 규정할 때는 ‘만’ 표기를 아예 없애버렸다.
 
새 기준을 세웠으니 굳이 ‘만’자를 거추장스럽게 달아 쓰지 않겠다는 취지다. 돌이켜보면 정부는 1962년 1월 1일 송요찬 내각수반이 “국민의 연령 계산을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국민 협조를 당부했다. 60년 만의 캠페인 성공 조짐인 셈이다. 가는 세월 잡을 수야 없겠지만, 새해에는 정부와 국민이 이렇게 함께 기분 좋은 일이 많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