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내용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인 6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이 나왔지만, 이번이 사실상 처음 윤 정부의 경제 기조를 드러내는 자리다. 하지만 내년엔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요국 통화 긴축, 경기 둔화와 함께 국내 실물경제 어려움이 커지고 있어서다.
[2023년 경제정책방향]
정부는 당면한 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거시경제 안정관리, 민생경제 회복지원, 민간중심 활력제고, 미래대비 체질개선 등 4가지 방향을 내세웠다. 거시경제에선 물가 안정에 집중하되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금융·외환 시장은 유동성 공급 등 리스크 관리로 안정을 도모한다. 고금리 속에 늘어나는 가계 부채도 새로운 뇌관이 되지 않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상반기까지 어려움" 물가 인상 압력 낮춘다
물가 관리에 필수적인 에너지, 농·축·수산물, 공공요금 인상 압력을 낮추기로 했다. 식품 할인 쿠폰 지원액을 늘리고, 상하수도·대중교통 요금 등은 인상을 최소화하거나 시기를 늦춘다. 대중교통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상향 연장, 학자금 대출 금리 동결 등 서민 생계비 부담도 줄인다.
다만 그동안 누적된 한국전력 적자와 가스공사 미수금을 2026년까지 해소하기 위해 전기·가스요금은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기로 했다. 내년 전기료 인상 요인이 ㎾h(킬로와트시)당 51.6원에 달하기 때문에 올해(19.3원)보다 요금 인상 폭은 커지게 됐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계속 올리는 상황에서 우리도 물가 우선으로 내년 방향성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긴축 재정이라도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악영향을 막으려면 효과적으로 예산을 써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청년·노인 등에 지원을 몰아줘 이들의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로 부동산 연착륙 유도, 수출 반등 지원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배제는 2024년 5월까지 1년 더 연장할 계획이다. 3주택 보유자의 취득세 중과율은 8%에서 4%, 4주택 이상은 12%에서 6%로 각각 완화한다. 단기 양도세율은 2020년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고, 그간 막아왔던 규제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한다. 내 집 마련이 필요한 실수요자를 위해선 부동산 규제 지역을 내년 초 추가 해제하기로 했다.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조정하고, 실거주와 전매제한 규제 등도 5년 전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목표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지만 10월부터 역성장 중인 수출은 반등을 꾀한다. 무역금융 등 전방위적 수출 지원을 이어가면서 반도체·건설 등이 포함된 5대 분야 중심의 수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년 상반기에 마련하기로 했다. 해외 인프라는 연 500억 달러 수주로 2027년까지 세계 4대 건설 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원전 수주에 집중하고, 방위산업 육성과 수출 확대에도 나선다.
이번 방향엔 거시경제 안정, 민생경제 회복에 주력하면서도 민간 중심으로 성장 동력을 끌어올려 문 정부와 차별화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기재부는 "지난 수년간 정부·재정 주도의 경제 운용과 과도한 규제 등으로 민간 활력이 크게 저하됐다"고 짚었다.
내년 하반기 경제 지표가 개선되면 정부도 본격적으로 '성장 페달'을 밟을 전망이다. 추 부총리는 간담회를 통해 "물가가 안정되는 모습이 확고해지면 경기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내년 초반엔 물가, 후반에는 경기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기존 정책 유지·확대 많아, 중장기 방향도 흐릿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대규모 부채, 급격한 금리 인상, 인구 구조 변화 등 지금의 한국은 장기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한 1989~90년 일본이 연상되는 위급한 상황"이라며 "긴 호흡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펼쳐야 할 때지만 정치적 부담인지 정부 대책에서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아 우려된다"고 밝혔다.
양준석 교수는 "정부 투자보다 민간 투자를 앞세웠지만 기업 상황도 좋지 않아 당장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규제 개혁도 기업 측 요구 반영 위주라 '경쟁 활성화'라는 철학과 전략이 부족하다"면서 "차라리 단기 해결책 없다는 거 인정하고 중장기적으로 가계·기업 부채를 관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