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덩샤오핑을 분노케 한 허위 보고

중앙일보

입력 2022.12.21 06:00

수정 2022.12.2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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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한우덕 선임기자

국진민퇴(國進民退). '국가가 나서고 민간이 빠진다'는 뜻이다. 시진핑 3기의 경제 정책을 전망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민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역류다.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의 큰 흐름은 정부 개입의 축소였다. 국가의 계획보다는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국유기업보다는 민간기업의 공헌이 커졌다. '민진국퇴(民進國退)다. 그게 '덩샤오핑 시대(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의 일관된 흐름이었다. 특히 후진타오는 경제 정책의 괘를 서방과 가급적 가깝게 깔기도 했다.
 
시진핑의 '신(新)시대'는 이 흐름에 브레이크를 건다. 국가의 개입을 다시 늘리고, 국유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겠다는 뜻이다. 정책 회귀다.
 
그렇다면 국가의 힘이 세졌을 때, 국가 계획의 역할이 커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문제는 향후 시진핑 경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찾아보자.


허위 보고(虛報)

 
중국에서 대약진 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 10월. 당시 부총리였던 덩샤오핑이 텐진(天津)의 한 농촌인 신리춘(新立村) 시찰에 나선다. 이 지역 농업 생산성이 전국 평균보다 무려 두 배 이상 높다는 보고가 올라왔기에 해당 지역 농민 장려차 이뤄진 시찰(調硏)이었다.
 
역시 대단했다. 논에는 잘 익은 나락이 추수를 앞두고 있었다. 들판에 벼가 가득했다. 주민들이 나와 풍악을 울리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지역 주민 대표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일장 연설을 한 뒤 돌아왔다.

1958년 10월 18일, 덩샤오핑이 벼 위에 올라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소후닷컴]

돌아오는 길, 덩샤오핑은 뭔가 찜찜했다. 어떻게 논 벼가 빽빽하게 자랄 수 있지? 그는 차를 돌려 현장으로 갔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논에는 아무도 없었다. 덩은 직접 논으로 들어가 벼를 뽑아 올렸다. 쑥 뽑혔다. 힘없이 딸려 나왔다.
 
엇~! 이게 뭐야, 벼에 왜 뿌리가 없어... 누군가가 생산량을 속이기 위해 다른 곳의 벼를 옮겨 심은 것이다.
 
덩샤오핑은 거짓 보고에 치를 떤다. '국가의 무리한 식량 증산 운동이 선량한 농민들로 하여금 허위 보고를 하게 한다'고 한탄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대대적인 허위 보고 척결운동을 펼치게 된다.

 
중국 관영 CCTV가 방송한 덩샤오핑 다큐멘터리 중 한 장면이다. '위에서 정책을 세우면, 아래는 대책을 마련한다(上有政策 下有對策)'. 정부 정책에 대해 민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준다. 국가의 간섭이 클수록 민간은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다.
 
이런 허위 보고 사건은 사라졌을까?
 

'21세기 대약진 운동' 반도체 공정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까지 끌어올리겠다.
 
중국이 이 내용을 담은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한 건 2015년이다. 시진핑의 경제비전이 나열되어 있다. 차세대 제조업, 특히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이 담겼다.
 
당시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0%가 채 못 되는 수준이었다. '10년 만에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그게 가능해?' 이런 의문이 제기됐지만, 중국은 자신 있었다. 정부가 동원 가능한 모든 가용 자원을 끌어 모아 특정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건 너무도 익숙한 중국 산업 정책이다.
 

중국 '반도체 공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지없이 국가가 나섰다. '돈은 걱정하지 마라. 얼마든지 쏜다. 기술만 가져와라'는 식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퍼부었다.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반도체 대기금 명목으로 3400억위안(약 67조4700억원)을 조성했다.
  
중앙이 깃발을 드니 지방정부도 따른다. 각 지방정부는 산하 투자공사를 설립하고 반도체 관련 프로젝트에 나섰다. 주요 도시에 '반도체 산업 단지'가 조성됐고, 관련 기업에는 투자금이 몰렸다. 한 해 수천 개의 반도체 회사(주로 설계 관련 벤처기업)가 중국 전역에 설립됐다.
 
대약진 운동 때도 그랬다. 당시는 철강 증산 운동이 벌어졌다. 마오쩌둥은 '15년 이내에 영국을 따라잡고 20년 후 미국을 추월하자(赶英超美)!'고 외쳤다. 각 지방에 철강 생산량 목표가 하달됐다. 전국 전역에 용광로가 세워졌다. 재봉틀, 농기구도, 심지어 젓가락에 이르기까지 쇠라는 쇠는 모두 화덕에 던져졌다.
 

반도체 공정은 대약진 운동의 데자뷔다. 기시감을 떨칠 수 없다.
 

다시 살아난 '허위 보고'의 망령

 
'우리도 7나노 기술의 반도체를 만들어 공급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SMIC(中芯國際) 얘기다. 올여름 뉴스가 언론에서 보도되면서 서방 업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7나노 이하면 초미세공정에 속한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을 2~3년 격차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얘기다.
 
7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의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극자외선노광장비(EUV)가 필요하다. 네덜란드 ASML만이 만들 수 있는 장비다. SMIC는 미국의 개입으로 EUV를 도입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자체 개발한 장비로 7나노 반도체를 개발했다는 말인가. 업계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속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은 '뻥'이라고 말한다.
 
"7나노 초미세공정 반도체를 억지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통할 지의 여부는 완전 다른 얘기다. 수율(非불량률)이 안정적으로 나와야 하고, 가격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수요처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대량 생산체계를 갖춰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다. SMIC가 일부 고객사에 7나노 반도체를 소규모 생산해 공급하는 사례는 만들 수 있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로 양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걸 뻔히 아는 SMIC가 왜 이 뉴스를 흘렸을까.

 
시장이 아닌 정부를 겨냥한 뉴스였기 때문이다. 정부 보고용 언론플레이라는 얘기다. SMIC는 정부 돈을 가장 많이 가져간 회사 중 하나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우리도 7나노 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쇼잉(showing)'이라고 서방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덩샤오핑이 가을 들판에서 거짓 벼를 보고 통탄한 '허위 보고'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1년 12.7%에서 2020년 15.9%, 2021년 16.7%로 올라갔다(IC인사이트). 놀랄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외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현지 생산량을 빼면 7%에도 이르지 못한다. 목표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중국 반도체 공정을 두고 '실패했다'라고 말하기는 이르다. 중국이 프로젝트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력한 정부 주도의 정책으로 시장은 왜곡되고 산업정책은 꼬일 수밖에 없다. 그걸 피할 수는 없다. 거짓 보고는 그 한 표상일 뿐이다.
 
중국 '국진민퇴'에는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으니 바로 부패다. 다음 칼럼에서는 반도체 업계의 부패를 얘기하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