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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징용 문제 해법 공식화 전에 할 일

중앙일보

입력 2022.12.2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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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한·일 간 현안의 해결을 위한 정부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타결의 계기가 될 외교 이벤트를 앞두고 서두르는 인상이다.
 
그동안 정부는 출범 이래 두 차례 정상회동을 하면서 관계개선을 향한 의지를 발신했다. 이 과정에서 주 쟁점인 징용문제 해법도 모색했다. 아직 공식화하지는 않았으나, 한국기업의 출연 및 일본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조성된 기금을 갖고 피해자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과 이를 거부하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 측 기금으로 변제하는 제3의 안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종래 우리 안보다 크게 유연한 것이어서 일본 측이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고는 해결이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한 정부가 과감하게 정책을 전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유연성에 대한 국민 정서나 야당 및 진보 여론의 반응은 어떨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대법원 판결보다 유연한 해법은
국내 여론의 역풍 부닥칠 가능성
한·일 간 해법 합의 이루기 전에
초당적 의견 수렴과 소통 필요
 
본디 외교 쟁점을 원만히 타결하려면 상대국과 협상하는 대외 전선과 함께 내부 여론 수렴 및 의견 조율을 하는 국내 전선에도 대처해야 한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무엇을 해법으로 할지, 이 해법에 대한 공감대는 어떻게 확보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요컨대 대외 전선과 대내 전선에서 ‘무엇을’과 ‘어떻게’의 문제를 잘 다뤄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국민감정이 발동되기 쉬운 일본과의 현안을 다룰 때는 국내 전선에서 ‘어떻게’의 문제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


정부는 출범 이후 대일 교섭 전선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해법을 성안하는 데에도 과단성을 보였다. 대외 전선에서 ‘무엇을’ 할지까지는 열심히 한 셈이다. 문제는 대내 전선에서 해법에 대한 공감대를 ‘어떻게’ 확보할지다. 정부가 생각하는 해법은 대법원 판결에 비해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하는 방식이어서 여론이나 야당이 그대로 수용할지 미지수인 데다 피해자들도 이견을 가지기 쉽다. 정부 혼자서 해법을 밀고 나가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물론 정부로서는 그동안 국내 전선에서도 설득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할 것이다. 민관협의회를 운영했고, 피해자들과 접촉도 지속하며, 여야 원로와의 대화 자리도 마련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성과는 제한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실무급의 민관협의회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피해자와의 접촉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견이 커진 점도 있다. 일부 피해자는 민관협의회를 이탈했고, 자신들 동의 없이 제3자가 대신 변제하는 데 반대한다. 원로와의 대화도 일회성이어서 한계가 있었다.
 
이처럼 정부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 그 강도를 충분히 높이지 못한 배경에는 다른 진영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관성이 정부 내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래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민감한 국민 여론, 그중에서도 진보 여론 및 피해자들의 견해를 수렴하는 일은 미완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지금 정부의 지지도는 높지 않고 여야 관계는 극도로 대립적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부 해법이 공식화될 경우에 어떤 일이 생길지 헤아리기 어렵다.
 
만일 국내적 논란 속에서 한일 간 해법이 합의된 다음, 정부가 바뀐 후 뒤집힌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니면 해법으로 제시된 방안이 법적으로 취약해 바로 쟁송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릴 경우에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피해자 동의 없는 제3자의 변제 방안을 법적으로 문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정부가 다른 진영의 의견을 수렴하는 소통과 협의 과정을 거쳐 해법을 마련한다면 논란의 여지는 크게 줄어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완결된 접근은 ‘문희상 법안’처럼 해법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적·법적 문제가 대부분 정리된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간 협의와 의견 접근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여건에서 가능할지는 불확실하다. 차선으로는 정부가 다른 진영과 더 소통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해법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치적으로 해법에 힘이 실린다. 그런 정치적 분위기를 통해 해법에 대한 반대를 무마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내년 초 언젠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때 맞춰 징용문제 해결이 추진될 것이다. 해법에 대한 공감대를 높이는 정치적 과정 없이, 정상회담 스케줄에 맞춰 해법을 띄우고, 한·일 합의를 이뤄내며, 홍보를 진행하는 행정 수순을 밟아 나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가도 무방할지, 방관하기에는 우려가 크다.
 
한·일 과거사는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이니 해법도 정치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관료적·행정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정부 내에서 기존 관성을 벗어나서 폭넓은 소통과 의견수렴 과정을 여는 정치적 작업이 있기를 기대한다. 해법을 공식화하기 전에 필요한 일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