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내려진 1심 판결은 무죄였지만, 올해 2월 2심 판결에선 유무죄가 갈렸다. ‘특허를 빼돌렸다’는 혐의는 무죄였지만, 연구비 외상거래 등에 대해선 유죄로 결론 났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단장이 사적인 용도로 유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속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의욕이 지나친 것이라고 보고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5년 끈 재판 선고유예로 마무리
“그린진·엣진 스타트업 2개 창업
광합성 효율 높이는 기술 등 도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로도 활동
“그린진·엣진 스타트업 2개 창업
광합성 효율 높이는 기술 등 도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로도 활동
그리고 6개월 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지난 1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아래 낙성대 인근에서 김 전 단장을 만났다. 그는 유전자가위 기업 툴젠의 창업자이면서 여전히 대주주이지만, IBS 단장 사임 후 툴젠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스타트업 창업자 겸 최고기술경영자(CTO)로 변신해 있었다.
- 선고유예인 2심 판결이 확정됐다.
- “그간 수사받고 재판받는 과정에서 많이 지쳤다. 완전 무죄가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마무리된 게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홀가분하다.”(그는 기소 후 IBS 단장직에서 보직해임 됐다가, 1심 무죄판결 이후 단장직에 복귀했다. 하지만 1년 뒤 2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서 IBS를 그만둬야 했다. 서울대 교수직도 내려놨다.)
- 수사와 재판이 5년째 이어졌다. 그간 연구는 어떻게 했나.
- “아무래도 수사받고 재판받으면서 논문을 읽고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초기 1년 동안은 논문을 한 편도 못 읽었다. 하지만 1심 판결 이후엔 계속 과거처럼 연구를 해왔다. 올해는 연구자로서 내 인생에서 최고의 한 해였다. 국제학술지 셀과 네이처바이오텍·네이처커뮤니케이션 등에 여러 편의 논문이 실렸다.”
- 왜 툴젠으로 돌아가지 않나.
- “지금 툴젠에 가더라도 도움이 될 게 없다. 기초과학 연구와 성과를 가지고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창업 20년이 넘은 코스닥 상장사인 툴젠은 지금 신약을 개발하는 단계다. 나는 지금껏 그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툴젠에 돌아가면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지휘하는 꼴이 되는데, 그건 주주인 저한테도 손해다.”
- 대신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 “그린진과 엣진이 그것이다. 그린진은 툴젠이 보유한 특허인 크리스퍼가 아닌 새로운 염기교정효소로 식물세포소기관의 유전자를 교정한다. 광합성 효율을 높여 농작물 생산성을 올리고, 이산화탄소 포집도 더 많이 하면 탄소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식물은 엽록체 안에 DNA가 있는 데 이건 크리스퍼로 교정할 수 없다. 하지만 1세대로 불리는 징크핑거와 2세대 탈렌을 변형한 염기교정효소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사실 유전자가위에서 세대 구분 개념은 잘못됐다. 각각의 장점이 있다. 엣진 역시 크리스퍼로 할 수 없는 미토콘드리아 내 유전자를 교정해서 관련 유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이제 시작이다.”
- 왜 스타트업 창업을 택했나.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 과학자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이 신기술을 연구·개발하고, 그 신기술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인데, 국내 대학은 지금 선고유예 기간이라 갈 수가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출연연 같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대신 스타트업을 하면서 외국대학 교수 활동도 시작한다. 연구라면, 대학 아닌 여기 기업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국서 유전자가위 이용한 신약 곧 나와
- 외국대학은 어디를 말하나.
- “싱가포르국립대 의대다. 경찰수사가 시작되던 2017년부터는 교수로 올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사실 수사가 잘 마무리되면 바로 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기소가 되면서 아예 못 가겠다고 대답했다. 재판 기간에도 계속 연락이 왔다. 이제 대법원 판결까지 났지만, 한국에서 벌인 일도 있고 당분간은 못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러면 방문교수라도 연을 맺어 놓자’고 제안해서 1년에 4주 정도 싱가포르에 가서 세미나에 참석하고 공동연구를 하기로 했다. 강의는 안 한다.”
- 유전자가위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 “지금 유전자가위, 그중에서도 크리스퍼 기술력에 기반한 미국 회사들이 나스닥에 상장돼 실적이 좋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창업한 회사다. 임상 3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빈혈증 치료제는 3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년에는 신약 승인인 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신약이 되는 거다. 이제 인간의 유전자를 고쳐서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