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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TSMC 폭파하라…중국엔 고통의 지렛대" 美교수의 도발 [김필규의 아하, 아메리카]

중앙일보

입력 2022.12.19 00:34

수정 2022.12.19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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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워싱턴특파원

올 한해 미·중 관계에 있어 가장 화제가 됐던 논문 중 하나가 '부서진 둥지: 중국의 대만 침공 억지'다. 
미 육군대학 계간지 '패러미터스(Parameters)'에 실린 이 글은 중국이 대만을 쳐들어가려 할 경우 대만의 TSMC를 폭파하겠다는 위협을 해야 한다는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실제 그렇게 하든 안 하든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가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이 믿도록 해야 섣불리 군사 행동에 나서지 못할 거란 주장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 몽고메리 미 공군대학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제러드 매키니 교수는 대만해협의 위기가 더 커진 지금 중국의 대만 침공 비용을 더 키울 '고통의 지렛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 중앙일보 워싱턴총국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 여기는 대만에선 당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학계에선 이 주장을 주목했고 이후 공개석상에서 자주 인용되며 패러미터스 발간 이래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지난 6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공장 부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TSMC의 400억 달러 미국 투자 결정을 반겼다. 왼쪽부터 웨이저자 TSMC CEO, 바이든 대통령, 마크 리우 TSMC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지금, 대만해협을 둘러싼 위기는 더 커졌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미 정보기관의 경고가 잇따른다. 
 
그 사이 TSMC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기존 계획보다 세 배 더 많은 400억 달러(약 53조원)를 들여 추가로 공장을 짓기로 했다.  


TSMC의 최대 고객인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이곳에서 만든 반도체를 쓰겠다고 약속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제조업이 부활했다"며 호평했다.
 
지난 12일 '부서진 둥지'의 공저자, 제러드 매킨리 미 공군대학 교수를 만나 TSMC를 둘러싼 미·중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번 투자가 양측 모두에게 "경제가 아닌 정치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만에서 비난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대만뿐 아니라 중국의 대만 업무 기관인 국무원 대만판공실로부터도 "무지하며 이단적인 발상"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오히려 글이 나가기 전 미국 측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런 논의가 이전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어디서든 이와 관련된 글을 접하게 된다. 이야기가 퍼진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중국 지도자들엔 TSMC 절실” 

TSMC에 대한 '초토화 전략'이 정말 중국 침략을 막을까
지금 대만해협에선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억지가 불가능하다. 양안의 공군력과 해군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토화 전략'이 필요한데, 2차 대전 중 소련군이 후퇴하며 열차 등 모든 자국 시설을 파괴해 독일군의 진격을 늦춘 게 좋은 예다. 대만은 이런 지리적 이점이 없는 대신, TSMC가 중국을 향한 '고통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중국 지도자들에겐 TSMC가 절실하다. 반도체 없인 그들이 내세우는 혁신주도 개발을 이룰 수 없고, 국가 경제나 군사력에서 뒤처지면 체제도 위협받는다. 중국이 대만 전쟁을 일으켰을 때 치러야 할 비용과 얻을 이익이 60 대 40 정도라면, TSMC 폭파 위협은 비용의 5~10 정도를 키울 수 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중요한 변수다.
 

대만 타이중에 있는 TSMC 반도체 생산공장. 매키니 교수는 대만 전쟁시 이곳을 폭파하겠다는 위협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을 '고통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TSMC의 400억 달러 미국 투자 결정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나.
'초토화 전략' 같은 논의가 (TSMC의) 사업적 불확실성을 키웠을 수 있다. 현재 TSMC는 유럽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확장은 사실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다. TSMC 입장에선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비용이 대만에서보다 50% 더 든다. 모두 정치적인 결정이고 경제에 관한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미군 무기 상당수 대만 반도체 의존” 

바이든 대통령은 TSMC의 투자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했다.  
미국이 이번 투자 결정을 반기는 것은 애플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관심사에서 가장 적은 비중일 수 있다. 미군의 무기 상당수가 TSMC의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 대만 전쟁이 날 경우 반도체 공급이 안 되면 무기 확보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TSMC의 투자를 유치한 것은 유사시 군사적 대응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안보상 좋은 결정이다. 
 
대만 전쟁이 정말 일어날까
전쟁 시점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이나,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인 2027년 등이 제시된다. 언제가 될 거란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앞으로 10년간 이를 우려해야 할 매우 현실적인 이유는 있다. 미국의 견제로 분명 중국 경제는 둔화할 것이고 그 대안으로 중국 내 국수주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2030년대에 미국은 중국보다 더 강한 위치에 설 것이고, 중국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구실을 찾을 것이다. 2024년이나 2028년 대만과 미국에서 있을 선거가 계기일 수 있다.

“군사적 억지력 한국, 대만과 달라” 

한반도 유사시, 반도체 공장이 있는 한국을 향해서도 초토화 주장이 나올까 걱정된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가 다르다. 일단 군사력에 의한 억지가 가능하다. 잘 훈련된 한국군이 있고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외부 침략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반도체 수입이 전혀 없는 북한에 반도체 공장이 필요할 거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