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VIP클럽엔 마오타이 넘친다"…中 떠나는 中부자들

중앙일보

입력 2022.12.16 05:00

수정 2022.12.16 09:22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지난 8월 홍콩국제공항에서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을 본딴 인형 앞을 마스크를 쓴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백만장자들의 탈(脫)중국 행보가 가팔라지고 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반복되는 봉쇄에 질린 데다, 내수 경기는 침체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산 규모가 줄고 있어서다. 여기에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내건 공산당의 예측 불가능한 규제까지 겹치면서 부유층을 중심으로 해외 이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5일 보도했다.

 
중국인의 해외 이주 문의는 급증하고 있다. 상하이에 기반을 둔 투자 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이 회사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이민 상담을 한 고객의 약 66%가 중국인이었다. 중국인 투자 이민 문의 건수만 놓고 보면 1분기보다 134% 증가했다.

 

“코로나·경기 침체에…올해 中부자 1만명 본토 떠나”

지난해 7월 싱가포르 멀라이언파크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빌딩가의 모습. EPA=연합뉴스

특히 부유층의 이주 움직임이 활발하다. 헨리앤파트너스는 올해 1만명의 부유한 본토 중국인이 자국을 떠나고, 홍콩에서도 3000명의 부유층이 타국으로 이주하는 등 부의 이민이 중국에 피해를 주기 시작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들이 최근 가장 많이 향하는 곳은 싱가포르다. SCMP는 “중국인 부유층을 중심으로 싱가포르행 투자 이민 열풍이 일고 있다”며 “중국 내 경제 및 사회 문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싱가포르가 중국 부유층과 전문직을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헨리앤파트너스는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싱가포르로 올해 2800명의 고액 자산가가 이동할 것이라며, 이는 2019년에 비해 87%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싱가포르엔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가족법인인 ‘패밀리 오피스’가 늘어나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2018년 50개이던 패밀리 오피스는 지난해 기준 700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3년 만에 14배 규모로 커졌다. MAS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운용되고 있는 자산은 지난해 4조7000억 싱가포르 달러(약 4533조원)에서 5조4000억 싱가포르 달러(약 5209조원)로 불었다. 
 

“싱가포르 VIP 클럽에 마오타이 주문 급증”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마리나샌즈베이 호텔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싱가포르 내 패밀리 오피스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한 이후 3년간 약 3배 규모로 늘어나 현재 약 1500개에 이른다고 추정한다”며 “증가분의 거의 절반 이상이 중국 본토 부유층이 맡긴 자산”이라고 전했다. 한 자산관리 업체 관계자도 SCMP에 “현재 600개 이상의 패밀리오피스 설립 신청이 MAS에 접수돼 승인절차를 밟고 있다”며 “이 중 절반 이상이 홍콩을 포함한 중국 출신의 부유층 가족들”이라고 말했다.

 
중국 부유층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싱가포르 상권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SCMP는 “싱가포르엔 고가의 비용을 내야 하는 호화로운 와인·칵테일 바가 많은데, 이곳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VIP 클럽과 고급 레스토랑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최근 개장한 클럽에선 회원권 가격이 최소 5만 싱가포르 달러(약 4830만원)지만 50석 전석이 개장 첫날 매진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 클럽에선 위스키와 와인 대신 중국인의 향수를 달래주는 전통주 마오타이(茅台)의 수요가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중국말 통하는 싱가포르가 좋아”

지난 8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내 하 의류 매장 앞을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부유층이 싱가포르를 이민처로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중국계 인구가 많다. 싱가포르 시민과 영주권자 중 약 4분의 3이 중국계다. 말레이계(13.5%), 인도계(9%)보다 훨씬 많다. 중국 본토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어가 공용어라는 점도 생활하는 데 유리한 점 중 하나다. SCMP는 “안정적인 정치 환경과 소득세 부담이 적은 요소로 인해 부유한 중국인들이 싱가포르를 금융자산을 보관하는 안전한 피난처로 여긴다”며 “양질의 교육시스템,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 등으로 인해 펀드매니저 등 중국 내 전문직 종사자들도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에선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민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인구가 늘었다. 비거주자를 포함한 싱가포르 전체 인구는 올해 기준 564만명으로, 지난해보다 3.4% 증가했다.

 
중국 부유층의 ‘차이나 런’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 상황이 여전한 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이후 공산당 당국의 권위적 통제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에 싱가포르에 정착할 계획을 세운 중국인 크리스틴 장은 SCMP에 “부진한 내수 경제, 혼란스런 코로나19 상황에 더해 중국에선 (부유층을 중심으로) 더 엄격한 세무 조사가 이뤄지며 자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중요한 건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