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정부 예산안의 야당 단독 수정안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4일 “최종 협상안을 제출하라. ‘데드라인’은 분명히 오늘까지”라고 최후통첩을 날렸지만 정부·여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이 양보하지 않으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정부·여당이) 끝내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따르느라 민심(民心)을 저버린 채 국회 협상을 거부한다면,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를 저지하고 국민 감세를 확대할 수 있도록 자체 수정안을 내일(15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저희가 최종 협상할 수 있는 건 없다”며 민주당 요구를 일축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해서 윤석열 정부를 일하도록 한 만큼, 첫 해는 (정부 요구를) 들어줘야 하지 않느냐”며 “민주당이 양보하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이 국회 본회의(15일) 전날까지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169석 민주당의 단독 수정안 가결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예산안 협상이 파국으로 가는 상황에 대해 “강경 노선을 택한 윤석열 행정부와 169석 민주당이 장악한 입법부라는 ‘이중권력’이 타협 없이 정면충돌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내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건강보험 개혁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강조하는 민생입법이 모조리 좌초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김성수(정치학) 한양대 교수는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성과를 막고, 윤 대통령은 야당 입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윤심(尹心)과 명심(明心·이 대표 의중)의 충돌로 정치가 멈췄다”고 말했다.
윤석열표 개혁 막는 ‘여소야대’…野 독자입법도 불가
국회 환경노동위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제시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하려면 결국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30인 미만 사업장 ‘주 8시간 추가근로제’의 일몰(日沒) 유예도 논의 진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을지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0월 윤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해당 제도를 2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법은 아직 환노위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전날 윤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 폐기를 선언하며 화두를 띄운 건강보험 개혁도 건보 급여·자격 기준을 제외하곤 모두 국회 입법(건강보험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의원은 “구체적인 정부 안을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의료비를 국민에게 전가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오랫동안 공언했던 ‘지역화폐 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마련하는 예산안 수정안엔 지역화폐 예산을 넣을 수 없다.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동의 없이는, 국회가 단 1원도 증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묵(정치학) 한국외대 교수는 “정치라는 건 결국 각 정당이 서로 양보해서 타협해야 원하는 제도를 입법할 수 있다”며 “서로 일방적인 태도로 밀어붙이면 아무것도 입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다른 여소야대(與小野大)…“협치 도모해야”
극한 대립의 해법을 두고선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부 출범 직후 야당이 꺼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카드로 협치가 난관에 봉착했고,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으로 대응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며 “양측이 서로를 ‘검찰 통치’와 ‘완박’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걸 중단하고 협치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준한(정치학) 인천대 교수는 “어쨌든 국정운영의 총책임자는 대통령인 만큼 ‘대통령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며 “정부 국정과제 성공을 위해서도 윤 대통령이 야당과 직접 만나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