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사이드]상용 제품 늘어나는 전장, 우리도 대비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2.1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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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군이 민간보다 기술 발전에서 앞서 있었다. 인터넷과 위성항법장치 GPS가 군에서 개발된 기술이 민간에게 개방되면서 많은 발전을 가져온 케이스이며, 이런 사례들을 스핀-오프(Spin-off)라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민간의 기술 발전이 군을 앞지르면서 스핀-온(Spin-on)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지원된 중국제 DJI 드론들. Ukrainian Military Center

 

상용 제품과 기술의 확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민간 기술로 만들어진 상용 제품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상용 제품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도 여러 크고 작은 전쟁에서 사용되곤 했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소형 픽업트럭에 다연장 로켓이나 대포를 싣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 이슬람 국가(IS)가 상용 드론에서 소형 폭발물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타링크 서비스 단말기의 모습. AFP=연합

 
상용 제품을 이용하는 것은 이런 분쟁 지역만이 아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연구 개발 능력을 갖춘 미 국방부도 민간의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위성 발사에 스페이스-X 같은 민간업체의 로켓을 사용하고, 전장 분석을 위해 민간 위성사진 업체들의 자료를 받고 있다.
 
상용 제품들은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 모두 다양한 상용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이용해 지구 저궤도에 구축한 위성통신망 스타링크는 러시아의 방해 속에도 우크라이나군에게 중요한 통신망을 제공하고 있고, 장거리 공격에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이 미국, 독일, 중국 등에서 사용 부품을 도입해 개발한 샤헤드-136 자폭드론으로 값비싼 미사일 대신 우크라이나 에너지망을 끈질기게 공격하고 있다.  


북한의 상용 제품, 기술 활용 눈여겨봐야

 
상용 제품과 기술의 군사적 이용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민간이 앞선 분야의 기술을 군에서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북한이 상용 기술과 제품을 어떻게 군사적으로 이용하느냐는 것이다.
 

이란의 샤헤드-131/136 자폭 드론에서 발견된 서방제 부품들. ISIS

 
북한은 오래전부터 상용 제품과 기술을 군용으로 전용하고 있다. 2014년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은 북한 무인기 사건은 북한이 중국제 상용 무인기를 들여와 개조한 후 우리 방공망의 허점을 노리고 침투한 것이다. 2012년 4월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된 8축 탄도미사일용 이동식 발사대(TEL)는 중국제 WS51200 임업용 벌목 운반 차량을 수입한 뒤 개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다양한 상용 제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이 상용 제품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한 인도의 잠무-카슈미르 지역 경찰이 자석이 포함된 폭발물을 탑재한 멀티로터형 드론을 격추했다. 멀티로터형 드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상용 제품이거나 상용 부품을 이용해 제작된다. 인도 경찰은 격추한 드론이 북한제라고 밝혔지만, 어떤 근거에서 내린 결론인지 밝히지는 않았다.
 
북한은 최근 상용 드론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주간에 열린 열병식에서 촬영된 영상이 드론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최근 열린 야간 열병식 등의 행사에서 군집 드론을 이용한 드론 쇼를 하는 등 드론 이용이 일상화된 모습이다.  
 
만약 인도 경찰이 격추한 드론이 북한제가 맞는다면, 폭발물을 탑재할 정도로 군사적으로 충분한 성능을 지닌 드론을 이미 대량 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기에 더해 이란의 지원으로 샤헤드-136 자폭드론 같은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샤헤드-136을 갖췄다면, 몇 년 전 타깃 드론을 개조한 무인타격기를 공개한 것보다 우리 군에게 훨씬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상용 제품과 부품 공급망 파악이 우선

 
북한이 이용할 수 있는 상용 제품과 부품은 드론만이 아니다. 중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업체들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핵심 부품의 자급도 이루어내고 있다. 유명한 인터넷 쇼핑몰 알리스프레스 등에서는 첨단 군용 제품에는 못 미치지만, 무시 못 할 성능을 낼 수 있는 열상장비 등이 판매되고 있다. 이런 상용 장비는 비록 성능은 떨어지지만, 아직 야간전 능력이 부족한 우리 군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중국제 벌목 운반 트럭을 개조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탄도미사일 TEL. VOA

 
이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으려면, 그동안 공개된 정보나 우리 군 또는 미국 등을 통해 입수된 첩보를 통해 북한이 입수할 수 있는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상용 제품의 입수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이후, 북한에 대한 더욱 촘촘한 제재를 시행하고, 그것을 방해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중요하다.  
 
우리 국민 일부는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신냉전 시대에 들어선 현재 이 두 국가가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그 동맹들을 압박하는 또 하나의 동맹으로 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의 대비 태세 점검도 필수

 
대외적으로 북한을 지원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협력 요구와 압박이 필요하지만, 대내적으로는 북한의 상용 제품과 사용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위협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의 드론에 대한 대응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는 듯하다.
 

인도 잠무-카슈미르 경찰이 격추한 북한제라고 주장하는 드론. 트위터 ZPHQJammu 계정

 
최근, 방위사업청이 북한 드론이 우리 영공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한국형 재머 개발에 나선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우리 군에 필요한 요구조건에 맞는 국외 장비가 없어 약 4년 동안 개발하고, 그 후 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밍은 드론을 막을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재밍과 함께 총기나 레이저를 이용한 복합 대응이 일반화되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는 장비로만 구성할 수 없다면 외국 장비라도 빠르게 도입하여 국산이 개발될 때까지 공백을 메우는 ‘갭 필러(gap-filler)’ 전략이 필요하다.
 
11월 24일, 육군 대학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연구 2차 세미나가 열렸다. 행사 초반, 육군 대학에서 교육받은 후 최근 복귀한 우크라이나 육군 대위가 현지에서 보낸 영상 인사가 공개되었다. 대위는 “위협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언제나 존재하는 현실입니다.”라며 영상을 끝냈다. 그의 말대로 우리에게 북한의 모든 위협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