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민영기업을 장악하나

중앙일보

입력 2022.12.12 06:00

수정 2022.12.1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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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시진핑 3기, 중국 경제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중국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부문에서도 국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당(黨)의 개입을 늘려가면서 제기되는 문제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집권 기간 '시진핑 경제'는 이미 그 속살을 충분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시진핑 3기 중국 경제정책은 1, 2기 집권기의 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그 노선을 해외에 '수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시진핑 시기의 과거 정책 흐름을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시 국제 경제의 큰 흐름과 연계해서 봐야 뚜렷이 보인다.

시간은 누구의 편이었나?

2000년 5월, 미국 의회는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교역관계(PNTR)' 지위 부여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중국이 PNTR 지위를 얻는다면 매년 거쳐야 하는 의회의 '최혜국대우(MFN)'심사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정상적인 교역대상국이 되는 것이다.  
 
중국이 바라고 또 바라던 일이다. 그러나 법안은 당시 미 의회 야당이었던 공화당의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민주·공화 양당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그 시기,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시애틀에 있는 보잉 공장을 방문한다. 그는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PNTR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한다.

중국과 자유롭게 교역하라. 시간은 우리 편이다(Trade freely with China and time is on our side).

그의 논리는 분명했다. 중국 경제가 미국 덕에 성장한다면 반드시 자유시장 경제 체제로 편입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미국 경제가 중국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중국이 셔츠 1억 장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 봐야 그들에게 보잉기 한 대 팔면 그뿐'이라는 시각이다.


덕택에 '중국 PNTR' 법안은 통과됐다. 공화당 지도부로서도 대통령 후보가 찬성한다니 더 이상 밀어붙이기가 어려웠다. 더 나아가 중국은 그다음 해인 2001년 11월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에 성공했다. 미국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워싱턴 컨센서스 vs. 중국모델(中國模式)

[사진 셔터스톡]

그로부터 20여 년, 시간은 정말 미국 편이었을까? 부시 전 대통령의 말 대로 중국은 자유시장 경제 국가가 되었을까?
 
아니다. 미국의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무럭무럭 성장한 중국 경제는 미국을 치받고 있다.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던 2001년만 하더라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약 1조4000억 달러로 미국(약 10조5000억 달러)의 약 13.3%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08년 20%를 넘어서더니 지금은 80%에 육박하고 있다. 시간은 중국의 편이었던 셈이다.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소련은 무너졌고,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가 형성됐다. 미국의 '자유 자본주의' 모델이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쳤다. 이를 대변하는 말이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다. 무역 및 자본 이동의 자유화, 정부의 개입 축소,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한다.
 
다른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도 결국 '워싱턴 컨센서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미국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나라 중국은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 시장경제 논리가 작동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국가가 산업 핵심을 장악했다. 국가가 경제 주체로 시장에 뛰어드는 '국자 자본주의(State Capitalism)'적 성향이다.
 
이를 보여주는 말이 당시 유행한 '중국모델(中國模式)'이다. 정부주도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대비되는 말로 쓰였다.
그렇다면 중국의 '국가 주도형 시장경제'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됐을까.  

당서기를 뽑습니다.

국유기업이야 국가가 소유한 기업이니 국가 주도로 움직인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민영기업에도 국가(당)의 힘이 강하게 미친다. 그 통로가 바로 공산당 조직이다.
 
시진핑은 2017년 말 집권 2기를 시작했다. 당시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게 '당 건설'이다. 민영기업은 핵심 대상 중 하나였다. '모든 민영기업은 빠짐없이 규모에 맞게 당 조직을 건설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공산당 당장(黨章)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당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당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3명 이상의 당원이 모이면 당지부(黨支部)'를 만들 수 있고, 50명이면 당총지부(黨總支), 100명 이상이면 당위원회(黨委)를 설립할 수 있다.'
 
잘 나가던 IT분야 민영업체들이 조여 드는 당의 압박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당에 잘 보여야 했다. 일부 거대 민영회사는 외부에서 당위원회를 이끌 당서기를 영입했다. 유명 포털인 바이두(百度)의 경우 연봉 약 1억원을 걸고 모집공고를 내기도 했다. 당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이끌어갈 '로비스트'가 필요했던 때문이다.

한 기업 내 두 개 명령 시스템

민영기업은 오늘 중국의 중국경제를 만든 주역이다. GDP의 60%, 일자리의 80%를 이들이 창출한다. 인터넷 혁명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부처님(당)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다. 기업 내 당조직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기업 내 당조직은 무슨 일을 할까? 당장에 나와 있는 기업 내 당 위원회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당 노선과 방침의 관철

2. 기업이 법을 지키도록 지도(引導)와 감독

3. 직원 단결

4. 기업과 직공의 합법적 권익 수호

5. 기업의 건강한 발전

 
기업으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항목들이다. 당은 회사 안으로 파고들어 해당 기업이 당노선을 잘 따르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있다. CEO에게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주요 경영 활동은 당조직을 통해 상세히 위로 보고된다. 회사 조직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권력 체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CEO 지시도 따라야 하고, 당 위원회 눈치도 봐야 하고… 그게 국가 자본주의 체제하의 민영기업 모습이다.
 
시진핑 3기를 시작하면서 중국이 내건 게 '중국식 현대화'다. 세상에는 미국식 자유 자본주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중국은 말한다. '국가 주도의 시장경제'를 의미하는 중국식 현대화 발전 모델도 있다. 그러니 경쟁을 통해 누가 더 효율적인 지를 따져보자고 시진핑은 도전장을 던진다. 그 '시진핑 경제 체제'를 구동시킨 역학 중 하나가 바로 '한 기업 내 두 명령 체계'였다.
 
국가 주도형 시장경제 시스템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다른 나라도 참조할 만큼 보편화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 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중국 경제가 이전처럼 고속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중국모델'은 중국에서나 통하는 구닥다리 논리일 뿐이다.
 
중국식 성장모델의 핵심인 '한 기업 내 두 명령 체계'가 과연 앞으로 제대로 작동할지, 다음 칼럼에서 더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