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기술은 다른 스포츠에서도 도입되고 있다. 올해 개최된 테니스 US오픈에서는 선심을 모두 없애고 ‘호크아이’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매의 눈’과 같이 공을 추적한다. 이제 테니스공이 선 밖으로 나갔는지는 전적으로 기계가 판독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스포츠 시합에서 머지않아 기계의 눈을 가진 ‘인공지능 심판’이 인간 심판을 모두 대체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AI심판은 인간의 의도 이해 못해
개개인의 판단·행동 위축할 수도
규칙 자동화는 시대적 흐름이나
인간 존엄성·자율성도 고려해야
개개인의 판단·행동 위축할 수도
규칙 자동화는 시대적 흐름이나
인간 존엄성·자율성도 고려해야
첨단기술로 수집한 실시간 정보에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누가 규칙을 위반했는지 판독하고, 더 ‘공정하게’ 규칙을 적용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하기도 하고,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인간 사회가 원활히 돌아가려면 어떤 형태로든 규칙이 있어야 한다. 구성원 수가 많아지고 다양한 협업이 이루어지면서 규칙은 점점 복잡하게 발전해 왔다.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기도 까다로워지고, 개개인이 규칙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일도 만만치 않게 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규칙 적용을 자동화하면 효율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스포츠 시합을 비롯한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 심판’이 인간 심판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판정 과정에서 인간의 의도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의 핸드볼 판정이 그렇다. 공이 선수 손이나 팔에 닿았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핸드볼 반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가 의도적으로 손이나 팔을 쓴 경우여야 한다. 그런데 의도성을 판단하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스포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은 대부분 그렇다. 살인죄를 생각해 보자. 똑같이 사람을 죽였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려는 고의가 있었다면 살인죄가 되지만, 그저 한 대 때리려고 했을 뿐이면 폭행치사죄가 된다.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였다면 정당방위가 되어 처벌을 면할 수도 있다.
아직 그 어떠한 인공지능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정밀한 센서와 카메라가 있다 해도, 아무리 기계적인 판정이 정확하고 공정해 보인다 해도, 인공지능 기술로 인간 심판을 완전히 대체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인공지능 심판이 사회적으로 꼭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 남을까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될 수 있다. 이른바 ‘위축 효과’의 문제이다.
사회 곳곳에 인공지능 심판이 도입되는 것은 전반적인 변화의 흐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그저 자연스러운 진보로만 여기고,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도 위험하다. 규칙에 반하는 행동을 찾아내고 공정하게 규칙을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 행동의 의도를 이해해 주고,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지킬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인간 문명이 이제껏 발전해 온 것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활동 덕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