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모여든 책방들, 질문하고 소통하는 ‘인문학 허브’로

중앙일보

입력 2022.12.08 00:03

수정 2022.12.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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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문정신 〈중〉 제주 동네책방

지난달 23일 제주도 김녕해변 인근에 위치한 서점 ‘이야기가게 일희일비’가 주최한 ‘가을 책 수확하기’ 워크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양장 표지도 직접 만들어보는 사람들. 김정연 기자

“책이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지는구나, 처음 알았어요.” 지난달 23일 제주 김녕의 서점 ‘이야기가게 일희일비’에서 열린 ‘가을 책 수확하기’ 워크숍. 참가자들은 책에 씌울 양장 커버를 직접 만들었다. 자신이 직접 쓴 책에 씌울 표지다. 이들은 모두 제주에 사는 젊은이다. 워크숍을 계기로 처음 만난 이들은 줄곧 책을 쓰고 만드는 이야기만 했다. 한지안(38) 대표가 알려주는 대로 책을 2권씩 만들어, 1권은 각자 챙겨가고, 1부는 책방에 남겼다. 책과 멀어진 듯한 시대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책을 만난다.
 
2022년, 책과 삶이 어우러지는 현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다. 제주에는 몇 해 전부터 책방들이 모여들었다. 가수 요조도 제주에 ‘책방무사’를 열었고, 성균관대 앞 인문책방 ‘풀무질’도 제주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등록된 제주 지역 서점은 81곳. 인구 8374명당 1개꼴이다. 서울이 1만9471명당 1개꼴, 인천이 2만1943명당 1개꼴이다. 여러 책방이 유명해지면서, ‘제주 책방 투어’도 생겨났다. 제주 서점들이 자체적으로 열던 축제 ‘책섬(썸:)’뿐 아니라, 올해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주최의 ‘문화예술섬 제주 위크’ 축제도 열렸다.
 
단순히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고,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저마다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올해 6월 구좌읍에 문을 연 ‘시타북빠’는 시를 키워드로 내세운 인문학 책방이다. 황경아(54) 시타북빠 공동대표는 “삶의 전환기, 어려움에 빠졌을 때 시는 붙들고 살 만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도, 소통의 통로도 없는 세상에서 인문학을 매개로 질문하고, 연결하고, 성장하고, 전환되고, 초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서점’ 검색. [사진 네이버지도 캡쳐]

더 나아가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는 연습을 책방에서 한다. 제주시 ‘한뼘책방’에서 ‘한뼘라디오’ 워크숍을 진행한 장혜령 작가는 “타인과 내가 너무 다른 목소리를 갖고 있으면 온전한 대화를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라디오(팟캐스트)를 매개로 소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종달리에 위치한 ‘책약방’은 종달초등학교 학생들이 쓴 동시집과 종달리 해녀들 이야기를 쓴 책을 전시한다. ‘제주 풀무질’ 은종복 사장은 10여 개의 작은 책모임을 꾸리고 있다. 제주 곳곳에 자리 잡은 서점은 일상 속 ‘인문학 허브’ 역할을 한다. ‘일희일비’ 한지안 대표는 “책방을 연 것만으로도 동네와 소통의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독서와 토론은 인문정신을 함양하는 일이다. 서울대 교육학과 신종호 교수는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는 일”이라며 “인문 문화가 보편화될 수 있도록 여유 있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고 책 읽는 시간을 늘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는 “인문학을 통해 인류가 세상에 남겨 놓은 모든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깨닫게 된다”며 “독서가 주는 지적 시뮬레이션으로 삶의 판단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