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1일 오후 한국과 홍콩에서 두 장의 법인카드가 각각 결제됐다. 한국 사용처는 용산의 모 잡화점이고 결제금액은 320만원. 홍콩에서는 ‘콜라겐’이란 곳에서 원화 기준 216만원이 승인됐다. 콜라겐은 홍콩의 고급 피부관리숍이다.
지난 6월 16일 오후에도 한국에서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9만9000원, 홍콩에서는 레인 크로포드란 영국계 명품 백화점에서 663만원이 각각 결제됐다. 한국과 홍콩에서 결제된 카드는 모두 대우산업개발이란 중견 건설사의 이모 회장(41)이 쓰는 법인카드다.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대우산업개발 법인카드 사용 내역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런 식으로 14개의 카드를 쓰면서 2021년부터 올해 11월 20일까지 홍콩에서 7억2000여만원, 국내에서 7억6000여만원(상품권 매입 2억8000여원 포함)을 사용했다. 최근 10년간으로 사용 기간을 넓히면 홍콩에서 43억원, 국내에서는 143억원을 썼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얘기다.
중견 건설사 회장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도 아닐 텐데 어떻게 한국과 홍콩에서 이렇게 거액의 ‘법카’를 동시에 쓸 수 있었을까. 특히 해외에서의 법인카드 사용은 굉장히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만 쓸 수 있는데 그가 무슨 특별한 일을 한 걸까.
회사 측의 설명은 이렇다. 이 회장의 부인은 중국에서 큰 사업을 하는 사업가의 딸이다. 회장 부인은 홍콩에 거주하면서 중국 진시, 둥관시 일대에서 개인적으로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건설공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회장 부인의 홍콩 사무실이 대우산업개발의 해외 사무소 역할을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회장 부인의 법인카드 사용은 중국 사업 진출을 위한 업무 목적이고, 업무 외 목적으로 부당하게 법인카드를 사용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우산업개발이 홍콩이나 중국에서 건설 관련 매출을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다.
국내 사용 부분도 세법에 정해져 있는 매출액 대비 접대비 한도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법카’로 썼다는 것이 회계·세무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얼마든지 현금화가 가능한 ‘백화점 상품권’ 매입은 세무서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보는 내역인데, 2018년 세무조사 당시 이 부분은 세무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2016~2018년 법인카드 사용액은 약 36억원이고 이 중 상품권 매입액은 7억4000여만원이다.
대우산업개발의 ‘법카’ 문제는 이 회사 최고경영진의 ‘회삿돈 빼먹기’ 의혹 중 일부다. 이 회사 회장 등에 대해서는 현재 금융범죄수사대와 남대문경찰서(올 4월 압수 수색)가 배임,횡령,분식회계,외국환거래법 위반,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