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 태생이라 무주리조트에서 처음 스키를 배웠다. 충청권 이남에서는 2008년까지 전북 무주의 덕유산리조트가 유일한 스키장이었다. 지금으로선 경기도 이남의 스키장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의외로 1990년대 초반까진 무주리조트의 슬로프 개장 시기가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용평리조트와 거의 같거나 앞섰다. 가령 1991년에는 무주리조트의 개장일이 11월 30일로, 12월 1일에 개장한 용평리조트보다 되려 하루 일렀다. 지금으로선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개장일이 대수냐 생각될 수도 있지만, 겨울 한 철 벌어서 1년을 버티는 스키장에서는 영업일 하루가 무척 귀하다는 게 문제다.
이번에 영업 중단한 베어스타운을 살펴보자. 2010년대 기준, 베어스타운의 개장일은 평균적으로 용평보다 14.5일 정도가 늦다. 스키장은 영업일 1일당 1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니, 베어스타운은 개장일 차이만으로도 매년 15억 정도를 경쟁사에 뒤지게 된다. 스키 업계 몰락의 일차적 원인이 저출산이라면, 줄어든 스키 이용객을 누가 데려가느냐는 스키장 간의 경쟁에선 기후변화가 훨씬 더 주요한 영향 요인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스키장만의 문제일까.
스키장 밖의 한국도 본질적으론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저출산으로 ‘소비자’가 주는 건 대체 방안이 마뜩잖고, 기후변화는 점점 심해져 올해는 11월 중에 개장한 스키장이 한 곳도 없다. 스키 업계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농어업은 물론 냉난방 에너지 수요까지 포괄하는 대규모 변화를 예고하는 슬픈 징조다.
전기료 인상 같은 기초적이고 중요한 문제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우리는 스키장 운영사들만큼이라도 절박성을 갖고 대비하는 중인지 모르겠다.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