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처벌보다 예방, 중대재해 로드맵 방향 잘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12.0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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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금껏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던 기업의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8년째 정체 중인 산재 사고사망 만인율을 오는 2026년까지 0.29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뉴스1

 

노사, 사망사고 못 줄이는 현 체제 문제 인정해야  

정부, 국회 설득해 중대재해법 등 과잉규제 보완을

 
정부가 엊그제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규제와 처벌 위주의 현행 시스템을 예방 위주로 바꾸는 내용이다. 산업안전 선진국이 이미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큰 방향은 잘 잡았다.
 
이번 대책은 정부가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산재 사망사고가 줄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올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발효됐지만 10월까지 중대재해 사망자는 2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명이나 늘었다. 처벌은 세졌지만 감옥행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안전 대책이 쏟아졌고, 경영자의 형사처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로펌의 컨설팅 일거리만 늘었다.
 
로드맵은 2013년 자율적으로 도입했던 위험성 평가 제도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해 개선 대책을 세우고 이행하라는 취지다.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중대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것보다 법인에 과징금을 매기면 기업 스스로 안전투자를 늘리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679개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 산업안전 관련 규정도 단순화한다.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다. 경영계는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중대재해법부터 보완하지 않고 위험성 평가 의무화라는 새 규제를 도입한다고 불만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위험성 평가를 자율로 하는데 한국은 처벌 규정까지 거론되고 있어서다. 반면에 노동계는 산재 예방을 기업의 자율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결국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봐주기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한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의 불만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로드맵이 치우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위험성 평가의 실효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다. 산업안전감독관의 전문성을 높이는 등 보완할 게 아직 많다. 노사 불만을 충분히 수렴하되 로드맵의 큰 틀은 흔들지 말아야 한다.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지 않았던 지난 10년간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용돼 온 사실은 경영계도 인정할 것이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산재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현실을 노동계도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안전하게 집으로 퇴근하고 싶다는 노동계의 호소는 존중받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중대재해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로드맵의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아울러 처벌과 규제 위주의 중대재해법·산업안전보건법 보완도 경영계의 걱정처럼 너무 늦어지지 않아야 하겠다. 정부가 국회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