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과 처벌이 자랑거리가 되어
권력·인기·돈으로 연결되는 세상
전략 없는 '법치'의 역효과 우려
그 과정에서 혁명 세력에 가담한 시민 98명이 사망했다. 그것으로 바스티유 습격은 폭동에서 지배세력의 시민 공격에 대응한 정의로운 항쟁이 됐다. 혁명의 명분이 그렇게 생성됐다. 그곳을 반드시 차지해야 했는지, 수비대 병사들을 무참히 죽여야만 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만 중요했다. 바로 그 7월 14일이 프랑스혁명 기념일이 됐다.
현존 질서 뒤집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명분이 필요하다. 그중 으뜸이 ‘권력의 폭압에 의한 피해’다. 실정법에 의거한 처벌, 합의된 제도에 따른 불이익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훈장으로 여기는 이가 흔하다. 법과 제도를 무시한 정치 투쟁에 앞장섰던 사람 중 전과자 아닌 사람이 드물고, 그들 대부분이 처벌 전력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 ‘박해 속의 투쟁’ 이미지는 당장의 이익으로도 이어진다. MBC를 보라. 저녁 메인 뉴스의 시청률이 최근 8%를 넘는 경우도 생겼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와 기자의 대통령에 대한 무례한 태도 논란 이후 시청률이 대략 두 배가 됐다. 편파 방송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확 줄었고, 되레 응원이 늘었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등이 한 데 모여 술 마시고 개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주장하는 인터넷 매체가 고발에 의해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후원금이 쏟아진다. 떡볶이 밀키트 광고까지 그 안에 등장했다. 선동이 인기와 돈이 되는 세상이다.
중국 공산당의 특기 중 하나가 삼전전략(三戰戰略)이다. 중국 내외의 분쟁에 동원되는 여론전·심리전·법률전의 3단계 수법이다. 여론의 지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성해 상대를 고립시키면서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영리한 계산이 깔렸다. 사드 배치 분쟁 때 한국 정부도 여기에 말려 고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거대 야당, 적대적 언론과의 싸움에 이어 노조와의 전쟁에도 돌입했다. 역시 여론에 의한 고립보다 법과 제도라는 칼이 먼저였다. 대통령은 법치를 확립해 고질적 정치 파업을 청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당사자들이 무서워하지 않는다. 통치자의 강한 의지에 버금가는 치밀한 전략이 정부에 준비된 것 같지도 않다. 이번엔 상대방 훈장 달아주기라는 허무한 결론을 피할 수 있을까.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