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막혀 기업대출 급증, 10년 만에 5%대

중앙일보

입력 2022.11.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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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기업의 자금줄이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가 풀리지 않고 있다. 이 여파로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 금리가 201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어섰다. 지난달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뜻이다. 가계대출 금리도 신용대출 금리가 7%를 넘어서는 등 금리 상승이 이어졌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10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평균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전월보다 0.61%포인트 오른 연 5.27%로 집계됐다. 기업대출 금리는 유럽 재정위기였던 2012년 9월(연 5.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특히 금리 상승 폭이 외환위기였던 1998년 1월(2.46%포인트) 이후 가장 높았다. 한 달 사이 대출금리가 0.5%포인트 이상 뛴 것도 외환위기였던 1997년11월~1998년1월 이후에는 없었다. 세계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 때도 기업 대출금리 상승 폭은 0.36%포인트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모두 올랐다. 대기업 대출 금리는 전월 대비 0.7%포인트 오른 연 5.08%로 집계됐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대출금리가 연 5%를 넘어선 건 2012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전월 대비 0.62%포인트 오른 연 5.49%였다. 한국은행 박창현 금융통계팀장은 “대기업 대출 금리가 상승한 건 지표금리가 상승한 데다 회사채 시장 위축으로 은행 대출 수요가 확대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채권시장의 돈맥경화로 지난달 회사채 시장에서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인 3조3232억원의 순상환이 이뤄졌다. 순상환은 신규로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해 다른 곳에서 자금을 구해 그만큼 빚을 갚았다는 뜻이다. 회사채 시장에서 돈을 구하지 못한 대기업까지 대출 창구에 몰리며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말보다 13조7000억원이 늘어나며 10월 동월 기준으로는 관련 통계 속보치를 집계한 2009년 6월 이후 가장 많이 늘었다.
 
기업의 자금 조달비용이 많이 늘어나며 신규 투자는 위축되고 있다. 한은은 이달 경제 전망을 통해 내년도 기업의 설비투자가 올해 대비 3.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내년 하반기에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6.7%나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도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돈맥경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기업어음(CP·91일 물) 금리는 지난 9월 말 연 3.27%에서 이달 28일 연 5.51%까지 두 달 사이 2.24%포인트 올랐다.
 
가계대출 금리는 전월 대비 0.19%포인트 오른 연 5.34%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금리는 2012년 6월(연 5.38%) 이후 가장 높다. 그나마 기업대출 금리보다 금리 상승 폭이 낮았던 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고정금리 대출을 해줬던 안심전환대출의 영향이다. 가계대출은 연 5% 이상이 표준이 됐다. 지난달 나간 대출 중 금리가 연 5% 이상인 대출 비중은 49.3%까지 치솟았다.
 
대출 별로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전월 대비 0.03%포인트 오른 연 4.82%로 집계됐다. 다만 신용대출 금리는 전월 대비 0.6%포인트 오르며 연 7.22%로 7%를 넘어섰다. 신용대출 금리가 7%를 넘어선 건 2013년 1월(연 7.02%) 이후 처음이다.
 
은행 간의 수신(예금) 금리 경쟁으로 저축성 수신금리는 전월보다 0.63%포인트 오른 4.01%로 집계됐다. 정기예금 등 순수저축성 예금 금리는 0.62%포인트 오른 연 3.97%로 집계됐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는 “조달비용 증가로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돼 내년 경제성장률이 한은의 전망치(1.7%)보다 낮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을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