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은 파벌 정치를 잘 활용한 지도자였다. 덩은 모든 능력 있는 자들을 모아 하나의 확실한 목표를 심어주었다. 하나의 목표인 경제 발전을 위해 어떠한 정책이 유리할 것인지에 대해 모두가 경쟁하게 했다. 그 결과 개혁파와 온건파가 생겨났으며, 그 후엔 테크노크라트와와 제너럴리스트 간의 파벌 싸움을 부추기기도 했다. 각 파벌은 경제발전이란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정책 선택과 관련한 건전한 투쟁을 벌였다. 덩은 산업정책과 금융정책, 재정정책, 나중엔 사회정책까지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전문 지식과 정치 철학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덩은 그저 뒤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심판자 역할을 맡았다. 이는 덩이 무소불위의 정당성을 가진 리더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벌 정치 활용한 덩샤오핑
이처럼 부족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진핑이 내세운 게 ‘이데올로기’ 투쟁이다. 시진핑 사상과 중국몽,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등은 그 기조부터가 어딘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한데 그런 것들을 중국 공산당뿐만이 아니라 전 중국사회에 퍼뜨리려 한다. 공무원 시험에서 시진핑 사상을 테스트 한다던가 하는 이데올로기 교육 강화가 바로 그런 것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기엔 그것을 실현할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뚜렷한 목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더 많은 반발을 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이데올로기 투쟁 하에선 그 밑의 파벌 싸움이 건전한 정책 경쟁이 되는 게 아니라 과도한 충성경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진핑의 부친인 시중쉰의 묘역을 성역화 한다던가 또는 중국 전통의 가치를 추구하려 공자 사당을 세우는 등 다소 애매한 방식으로 시진핑의 개인적 취향을 맞추려는 노력이 벌어질 것이다. 특히 시진핑이 풍수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진 만큼 많은 지방 관료들이 풍수가 좋다는 곳에 앞다퉈 이데올로기 학습관이나 시진핑의 이름을 딴 지역 명소를 만드는 등 덩샤오핑이 금지했던 ‘리더의 우상화’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짙다.
시진핑 충성 경쟁 벌어질 전망
관리들은 더욱더 보신과 안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 경제 발전이나 사회 발전이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중국 경제 발전의 큰 역할을 했던 성과주의와 지방 분권주의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 관리들이 지방 경제나 인민의 안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시진핑 측근들이 벌이는 충성 경쟁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목표를 안전하게 추구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정책 실패가 시진핑의 책임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국가의 특징이다. 20차 당 대회 보고에서 시진핑이 “안전”이라는 단어를 그 무엇보다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처럼 중국 공산당 정부가 민주주의 제도 없이도 어느 정도 민중을 위하고 장기적 목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파벌들의 균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각 파벌 간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인들은 의미 있는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공산당의 첨병 역할 그리고 공산당의 트레이닝 센터 역할을 해온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은 하나의 제도화된 조직이었다. 그 단원은 어떠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게 훌륭한가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공산당의 관료가 되기 위해 길러진 인재들이었다.
견제 없으면 독재국가로 회귀
이미 대부분의 고위 관료가 관시를 통해 이득을 충분히 얻었던 사람들이었다. 제도적인 견제와 균형 없이 파벌 간의 균형만으로 독재국가로부터 책임감을 불러오는 것은 너무나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는 현시대에 또 다른 교훈을 제공한다. 지도자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그 정권은 전형적인 독재국가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종혁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