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비추어라’는 가로 9.6m, 세로 3m의 대작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해 만들었다. 김경자 화백이 밑그림을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장인 셋이 협력했다. 민화풍 바탕에 십장생과 피에타·천지창조, 순교자들의 처형 장면 등을 새겼다. 한국 천주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표현했다고 한다. 총 석 점이 제작됐으며, 그중 한 점은 바티칸 교황청 우르바노대에, 나머지 한 점은 여주 옹천박물관에 기증됐다.
화엄사상 압축한 해인사 ‘법계도’
“천주교 작품에 변용” 조계종 발끈
차이·공생 존중하는 게 종교의 뜻
“천주교 작품에 변용” 조계종 발끈
차이·공생 존중하는 게 종교의 뜻
불교계가 지목한 곳은 작품의 오른쪽 중앙, 이른바 미래 파트다. ‘법계도’ 문양의 묵주알에 십자가를 단 부분이다. 조계종은 ‘법계도’ 도용(盜用)까지 언급했다. 불교계가 특정 예술품을 놓고, 그것도 전시 3년이 넘은 공예품에 대해 상대 종교에 거세게 항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계도’는 신라 의상대사가 '화엄경' 내용을 210자 게송(偈頌)으로 요약한 도안이다. ‘법(法)’자로 시작해 ‘불(佛)’자로 끝나는 54각의 미로형 네모꼴 안에 불교의 깨우침을 집약했다. 해인사를 넘어 한국 문화의 자산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를 예술품에 원용한 것이 조계종 주장대로 표절·도용에, 또 ‘법계도’에 십자가를 연결한 것이 ‘불교 폄훼’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예술에 그만한 자유도 없다는 것일까. 원작의 인용과 재해석은 예술의 기본 영역 중 하나다. 더욱이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가 무수(無數)·무량(無量)·무변(無邊)하다’는 게 '화엄경'의 가르침 아닌가.
서소문박물관 측은 일단 해인사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종교 간 화합 차원에서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작품을 철수하고, 작품도 일부 수정할 예정이다. 논란의 ‘법계도’ 부분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예수가 사망·부활한 나이인 ‘33’ 이미지를 새길 계획이다. 반면에 창작자에게는 대단한 결례가 될 수 있다. 예술이 종교보다 앞서는 건 아니지만 종교가 예술을 앞서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봄 서소문박물관에선 뜻깊은 전시가 열렸다. ‘공(空)’을 주제로 한 현대불교미술전이다. 전남 구례 화엄사 초대형 괘불(掛佛·국보)도 2년간 보존 수리를 마치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종교 간 대화의 아름다운 전례를 남겼다. 코로나19의 아픔을 달래고 ‘좋은 것은 함께한다’는 공존의 가치를 일깨웠다.
그런데 1년 반 만의 갑작스러운 반전(反轉)이란? 손바닥 뒤집기도 아닌데 말이다. 조계종은 작품 철거에 이어 천주교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여주 주어사, 광주 천진암 등 천주교 성지화 작업을 들며 ‘종교 역사왜곡 공정’이라 비판하고 있다. 두 종교의 대립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념·세력 다툼은 현실 정치판에서 물릴 만큼 겪었다. 차별·적대를 넘어선 차이·공생을 존중하는 게 불교의 ‘불이(不二)’이자 천주교의 ‘사랑’이지 않은가. 두 종교의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