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한센인 돌본 의사, 상금 2억도 그들 위해 썼다

중앙일보

입력 2022.11.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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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찬 부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 그는 상금 2억원을 사회적 편견 탓에 여행이 여의치 못했던 소록도 주민의 여행 경비 등에 쓰겠다고 했다.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시상식 전에 오 부장님 가족분들과 식사했는데, 사모님이 입고 있는 털 스웨터가 30여년 전 오 부장님이 선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걸 또 오늘 기념으로 입고 오셨다고 하는데, 사모님께 박수 한 번 치시죠.”
 
지난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4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박수를 유도했다.
 
오동찬(54)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이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27년간 한센인을 치료한 공로로 의료봉사상을 수상했다.
 
정 이사장은 오 부장의 이런 희생적인 삶에 부인의 헌신과 지원이 큰 힘이 됐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오 부장은 조선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록도 공중 보건의사를 자원한 뒤 27년간 한센인을 떠난 적이 없다. 아랫입술이 처져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재건 수술법을 고안해 500명의 입술을 살렸다. 뒤틀어진 턱과 관절을 수술하고 틀니를 제작했다.
 
오 부장은 매달 월급에서 50만원을 떼 600만원이 모이면 해외 한센병 환자를 찾아간다. 2005년부터 연 2~3회 캄보디아·몽골·베트남·필리핀으로 간다. 비용은 전액 자비다. 오 부장의 가족이 함께 가서 진료를 보조한다.
 
이번에 가장 큰 상을 받았는데.
“이 상은 한센인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강하다는 걸 보여준다. 소록도에 오래 진료했다고 이 상을 주는 것 같은데, 이게 편견이 아니고 뭔가. 그래서 상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금(2억원)은 어디에 쓸 건가.
“가족회의에서 필요한 곳에 쓰기로 결정했고, 소록도 주민의 여행 경비와 해외 빈민촌을 위해 쓰도록 모두 송금했다. 죽을 때 흙으로 돌아간다는데, 덤으로 들어온 돈을 갖고 있으면 욕심만 생긴다. 내가 가질 이유가 없다.”
 
오 부장의 네 식구는 국립소록도병원의 사택에 산다. 집이 없다. 다른 부동산도 없고 금융재산도 별로 없다.
 
집이 없는데 퇴직 후 어떡할 거냐.
“걱정할 필요 없다. 필리핀의 한센인 마을이나 빈민촌으로 가서 진료하면서 살려고 한다. 지금은 공무원 월급으로 부모님 용돈 드리고 우리 가족이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퇴직 후엔 연금이 나오는데 그 정도면 필리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록도 환자들의 상태는.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가 한 명도 없다. 이미 균이 사라졌다. 한센병을 앓은 적이 있는, 그냥 평범한 어르신일 뿐이다. 결핵에 걸리면 결핵 환자라 불러도 치료되고 나면 결핵인이라고 안 부르지 않느냐. 소록도에 425명(평균 연령 79세)의 어르신이 산다. 한센병이 다 치유가 됐는데도 아직도 한센인이라고 부른다. 그냥 소록도 주민이라고 하면 된다.”
 
감염된 사람이 없나.
“직원과 직원 자녀 중 이 병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균이 약하고 쉽게 치유된다. 과거 선입견과 편견 때문에 치료를 안 해줘서 장애가 남았을 뿐이다.”
 
오 부장은 “직원 200여명(의료인 170명)이 어르신들을 목욕시키고 식사 수발하고 기저귀 갈아준다. 우리는 손이 괜찮으니까 전구를 쉽게 교체하지만,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다. 깨진 유리창 교체, 보일러 수리 등 모든 것을 직원들이 헌신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상은 우리 직원 200여명이 받은 상”이라며 “같이 고생하는데 저만 받아서 미안하다. 내가 대표로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