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살만 효과' 성공하려면…무기 판매만 초점? 그러다 뒤쳐진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2.11.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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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방한으로 우리나라 업체들이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수주 등 좋은 성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에 의하면, 왕세자가 네옴 시티 건설 외에도 방산ㆍ원전ㆍ문화관광ㆍ수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트너십 추진에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야 한다.
 

이달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부터)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SPA 캡처

 

사우디 변혁을 위한 비전 2030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과를 얻으려면 빈살만 왕세자가 밀고 있는 ‘비전 2030’을 알아야 한다. 비전 2030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다룬다며 2016년 4월 25일 발표한 국가적인 프로젝트다. 비전 2030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벗어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 로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비전 2030은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라는 3대 영역에 걸쳐 1단계인 주요 목표(Overarching objectives) 6가지, 2단계인 분기 목표(branch objectives) 27가지, 3단계인 전략 목표(strategic objectives) 96가지를 선정했다.
 
이를 뒷받침할 하부 구상에는 203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민간 부문에 1조 3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샤렉 프로그램, 2024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기반을 두지 않는 외국 기업과 계약 체결을 중단하는 프로젝트 HQ 구상, 그리고 공공 및 민간 부문의 파트너와 협력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품과 서비스가 국제적으로 선호되도록 만들려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이드 구상이 있다.


방위산업 육성 노리는 사우디

 
사우디아라비아는 2021년 기준으로 국방비 지출 세계 6위지만, 무기 도입에서 세계 2위일 정도로 방위산업 역량이 미약하다. 빈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군 군사 구매의 50%를 자국 업체에서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에 많은 공장 그리고 일할 인력이 필요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방위산업 육성을 책임질 SAMI(좌)와 GAMI(우). 사우디아리바이정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비전 2030 발표 이전에도 방위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2012년 5월, 당시 국방부 차관이었던 칼리드 빈 술탄 왕자는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중요 핵심 부품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인력 문제로 많은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7년 5월, 국영 방위산업 대기업 사우디아라비아 군사산업(SAMI)을, 같은 해 8월에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청에 해당하는 군수공업총국(GAMI)을 설립했다. SAMI와 GAMI가 본격적으로 해외의 무기 제작업체와의 합작기업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에도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해외 업체와 협력에 의존하는 상황

 
SAMI와 GAMI의 설립으로 자국에 세워진 업체들에 직접 투자할 길이 열리면서 차차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군용 무인항공기를 제작하는 자국 업체들과 잇달아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사우디에서 조립되어 출고된 첫 호크 훈련기 앞에 선 빈 살만 왕세자. 출처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그러나, 자국 기업들이 만든 무인항공기는 운용하고 있는 전체 무기와 장비에서 볼 때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비전 2030을 위해서는 자신들이 도입했거나 도입할 무기와 장비를 제작한 국가와 회사들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현지 합작 기업들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19년 4월 초, 영국의 BAE 시스템에 주문한 호크 Mk165 제트훈련기 22대를 현지에서 조립 생산하여 출고했다. 2022년 3월에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에 사용되는 요격미사일 발사기와 캐니스터를 사우디에서 제작하기로 했다. 레이시언 테크놀로지스와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용 부품을 현지 생산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이렇게 외국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자국 업체들의 방위산업 기술 습득과 인력에 대한 숙련을 모두 잡으려 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경쟁 구도 불가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자신들이 육성하는 방위산업이 걸프 지역 이슬람 국가들의 협력체인 걸프 협력 기구(GCC) 회원국과 협력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20년 9월, GAMI 수장은 자신들의 연구 개발, 교육 및 모범 사례 공유를 통해 방위 부문 전반에 걸쳐 GCC 회원국 사이의 노력을 통합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국 회사가 합작 기업의 형태로 진출하도록 하고 있다. SAMI

 
그러나, 이런 전략은 앞서 자체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와 경쟁 구도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UAE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위사업 육성에 나섰고, 현재는 국영 방위산업 대기업 엣지(EDGE), 그리고 정책을 총괄하는 타와준 경제위원회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UAE도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자국 기업 육성과 함께 외국 기업과의 합작 기업 설립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나라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는 방위산업과 항공우주 박람회에도 정성을 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3월 첫 국제 규모 방위산업 전시회인 국제 방산 전시회(WDS)를 열었고, 앞으로 2년마다 개최할 예정이다. UAE는 홀수 해에 국제 방위산업 전시 및 컨퍼런스(IDEX)와 두바이 에어쇼로 사우디보다 앞서 있다.  
 
세계 무기 시장에서 큰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자체 방위산업 육성 전략은 걸프 지역에 무기 수출을 늘리려는 우리나라 정부와 업체들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동 무기 시장은 단순한 판매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현지화 전략을 살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협력의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방위사업체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